[K바이오 프런티어] "말기암 환자 치료 돕는 항암바이러스… 항암제 패러다임 바꿀 것"

인터뷰
문은상 신라젠 대표

평범했던 치과의사

항암바이러스 논문에 관심
신라젠 투자자에서 경영 참여
"미국 제네렉스 인수 주도했죠"

항암바이러스 펙사벡 개발

말기암 환자 완치 약 없는 현실
사이클로 병용요법 임상 1b상
10명 중 2명 최상 결과 나와
"내년 간암 3상 중간결과 발표"
“말기 암 환자를 완치하는 꿈의 항암제가 이제 한국에서 나올 때가 됐습니다. 항암바이러스는 생명 연장에 그쳤던 항암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입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1년 전보다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 상장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만났던 1년 전엔 꽤나 날이 서 있었다. 당시 ‘사기 치는 것 아니냐’는 원색적인 비난부터 ‘상업화가 불투명하다’ 등 온갖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다음달 6일 상장 1주년을 맞는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5조원(8일 기준)을 넘었다. 공모가 1만5000원였던 이 회사의 주가는 7만4900원으로 다섯 배 급등했다. 문 대표는 “1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것은 펙사벡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했다. 확신에 찬 말투는 여전했다.

치과 의사에서 개발사 대표로

문 대표는 처음엔 신라젠의 투자자였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해 러시아 모스크바 제1의과대학에서 두경부 외과를 전공했다. 1996년 국내에서 치과를 개업한 문 대표는 2009년 항암바이러스 논문을 본 뒤 신라젠을 통해 미국 제네렉스(현 신라젠바이오)에 200만달러를 투자했다. 항암바이러스는 모스크바 유학 당시 관심을 갖던 분야였다. 2010년 신라젠 대주주가 된 뒤 경영에 참여해 제네렉스 인수를 주도했다. 2014년부터 신라젠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펙사벡의 권리를 갖고 있던 제네렉스를 인수한 이후부터 신라젠은 진지한 신약개발사가 됐다”며 “이제는 세계 최고의 제약사와 세계 최고의 기관이 신라젠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신라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세계 최초의 항암바이러스인 암젠의 ‘임리직’이 2015년 출시되면서다. 암젠이 진행하고 있는 임리직과 다른 항암제들과의 병용요법 임상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자 임리직 외에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신라젠의 항암바이러스 펙사벡에 이목이 쏠렸다. MSD의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 임리직을 동시 투여한 임상 1상에서 피부암(흑색종) 완치율은 33%였다. 키트루다를 단독으로 썼을 때의 5%보다 여섯 배 이상 높다.문 대표는 “면역관문억제제와 항암바이러스가 출시된 2015년 이전에는 말기 암 환자를 완치할 수 있는 약이 없었다”며 “MSD와 암젠의 임상 결과는 말기 암이어도 10명 중 3명은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펙사벡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라젠의 프랑스 협력사 트랜스진은 지난 9월 유럽종양학회에서 펙사벡과 화학항암제 사이클로포스파미드 저용량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1b상 결과를 발표했다. 안전성이 확인됐고, 10명 중 2명에서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고 문 대표는 전했다.

간암 3상, 중국 승인으로 속도 빨라질 것
펙사벡은 유전자 재조합 백시니아(우두) 바이러스다. 백시니아 바이러스가 티미딘 인산화효소(TK)를 만들지 못하도록 조작했다. TK는 바이러스 증식에 필요한 일종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번식을 위해 TK를 찾는 펙사벡은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가 왕성하게 TK를 분비하기 때문이다. 암세포로 파고든 펙사벡은 TK를 빼앗아 빠르게 증식한다. 펙사벡의 빠른 증식으로 암세포는 결국 터져 죽게 된다. 펙사벡이 암세포에만 작용하는 원리다.

또 암세포가 터지면서 숨어 있던 항원이 드러나 인체의 면역 반응을 유도하게 된다. 직접적인 암세포 살상뿐 아니라 면역 체계를 움직여 항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항체는 암세포를 기억해 암 재발도 억제한다.

문 대표는 “기존 항암제는 암이 발생하는 원인에서 치료법을 찾았다면 항암바이러스는 암의 결과인 암세포에 작용한다”며 “암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하기 때문에 원인과 관련된 치료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항암바이러스 개발은 암세포의 천적을 찾은 것과 같다고 했다. 특히 난공불락이었던 암 덩어리를 터뜨려 암의 방어막을 없애자 대부분 항암제의 효과가 높아지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라젠은 현재 간암 신장암 대장암 유방암 등을 대상으로 7개의 펙사벡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다른 항암제와 같이 투여하는 병용요법 임상이다. 속도가 가장 빠른 간암은 3상 단계로 바이엘의 ‘넥사바’와의 병용이 이뤄지고 있다. 항암제 분야에서 대규모 글로벌 3상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은 국내에서 신라젠이 처음이다.

문 대표는 “600명의 환자를 목표로 하는 간암 3상에는 현재 200명 이상의 환자가 등록했다”며 “지난 7월 세계 간암 환자의 50%가 분포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3상 개시 승인으로 환자 모집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3상 데이터는 2019년 연말께면 마무리돼 2020년 펙사벡 출시를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3상 중간 결과 발표도 계획 중이다.

문 대표는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치부했던 일들을 신라젠이 하나씩 이뤄나가고 있다”며 “펙사벡의 간암 3상이 순항하고 있고, 내년에는 면역항암제 및 화학항암제와의 병용요법 임상들의 중간 결과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임상 1, 2상 단계 병용요법에서 긍정적 결과가 나오면 신라젠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달라질 것이란 예상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등도 러브콜

내년에는 간암뿐 아니라 다른 고형암에서의 가능성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간암을 제외한 6건의 임상에서 중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펙사벡의 장점은 백시니아 바이러스가 온 몸을 돌아다니며 감염된다는 것”이라며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피부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피부암(흑색종)에만 적용할 수 있으나 백시니아 바이러스는 모든 고형암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암젠의 임리직은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펙사벡의 고형암 치료 가능성은 글로벌 제약사 및 연구기관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3대 혁신기업인 리제네론은 신장암을 대상으로 펙사벡과의 임상 1상 병용요법을 준비하고 있다. 리제네론의 면역관문억제제와 펙사벡 병용 투여의 안정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미국 국립 암 연구소(NCI)도 대장암과 관련해 아스트라제네카의 면역관문억제제와 펙사벡의 병용 임상 1·2상을 지난달 개시했다. 임상비용은 NCI가 댄다. 이밖에 트랜스진은 면역관문억제제인 옵디보와 여보이 및 화학항암제와 펙사벡 병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문 대표는 “대부분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이고 고형암이 대상”이라며 “한 곳에서만 긍정적 결과가 확인돼도 나머지 임상에 대한 기대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글로벌 제약사들도 펙사벡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며 “객관적 데이터가 확보되면 기술수출에 있어 신라젠의 선택지도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속 항암바이러스도 대기

신라젠 제1의 목표는 펙사벡 출시다. 아직까지도 신라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문 대표는 회사를 알리기 위해 지금까지 기업설명회만 700회 이상 열었다.

펙사벡 후속 항암바이러스도 대기하고 있다. ‘JX-900’ 후보군이다. 문 대표는 “펙사벡도 정맥 투여가 가능하지만 이들은 정맥 투여 시 효과가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암 덩어리가 아닌 정맥에 투여하면 혈관을 따라 돌아다니며 몸속의 암세포를 찾아다닌다는 장점이 있다. ‘JX-929’와 ‘JX-970’은 내년 2분기 임상 1상을 계획하고 있다.그는 “지금까지 펙사벡 개발에 500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며 “암 완치의 희망을 본 국내 의사들이 투자한 자금만 1000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이어 “신약개발의 성공을 기술수출로 보는 것은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임상 3상을 수행할 자금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신라젠은 3상을 이끌고 있고, 한국에서도 글로벌 신약이 나올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