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제안권' 앞세운 은행 노조…기관투자가들 "기업가치 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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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 은행 노조 경영참여 '제동'기관투자가들이 은행 노조의 경영 참여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섰다. 노조가 친노조 성향의 정부를 등에 업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는 결코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일반 기업에 비해 노조의 경영 참여를 더 쉽게 만들어주고 있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목소리 커진 은행 노조…경영 참여 시도
일반 상장사는 3%인데 금융사는 0.1%로 주주제안
기관 "노조 경영 참여땐 인건비 오르고 효율 떨어져"
◆의결권 자문사, 잇따라 노조제안 ‘반대’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오는 20일 KB금융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난 9월 우리사주조합 등의 KB금융 주식 92만2586주(지분율 0.18%)를 위임받아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 노조 측 주주제안의 핵심은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하는 안건과 지주 대표이사(회장)를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6개 소위원회에서 일괄배제하는 내용의 정관변경 안건이었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을 활용해 지배구조 건전화를 위한 주주제안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의결권 자문사들은 잇따라 국민은행 노조가 제안한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ISS 측은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에 대해 “과거 활동 경력, 이력을 살펴볼 때 금융지주회사 이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지 명확하지 않고 기존 이사회에도 법률전문가는 있어 전문성이 중복된다”고 분석했다.이어 ISS 측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지배구조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도 “계열사에 대한 대표이사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은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역시 ISS와 마찬가지로 ‘감사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회는 대표이사가 경영활동하는 데 필요한 기구들이라며 일괄적 배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기관들 “노조의 경영 참여 반대”
두 자문사가 모두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서 이번 주총에서는 노조의 경영 참여가 불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ISS는 글로벌 기업들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의견을 내놓는 최대 의결권 자문사로 외국인 투자자 및 국민연금 등이 이를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KB금융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69.07%, 국민연금은 KB금융의 최대주주다.국내 기관투자가들도 대부분 ISS 및 기업지배구조원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한 운용사 대표는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면 인건비가 상승하고 경영 효율성은 떨어지게 된다”며 “이는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대다수 운용사는 노조의 경영 참여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회사 노조들은 경영권 참여 요구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소수주주들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상 일반 상장사는 의결권이 있는 지분의 3%가 있어야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33조에 따르면 의결권 지분을 0.1%만 보유해도 주주제안권 행사가 가능하다. 우리사주 조합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가 경영 참여 목소리를 내기가 쉬워졌다.
이 때문에 KB금융이 가장 먼저 주주제안을 내걸었고, 우리은행 하나금융 등의 노조들도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활용해 주주제안권을 행사하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우리사주조합 지분율(5.6%)이 가장 높은 우리은행도 KB금융보다 앞서 사외이사 선임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신청했지만 아직 채택되지 않은 상태다. 향후 지주사로 전환하는 시점에 이 같은 주주제안을 걸 계획이다.우리은행 노조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안을 제안한 이유는 국민은행 사례와는 다르다”며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은 제1대 주주를 목표로 꾸준히 지분율을 늘려왔고 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직원들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권에 참여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미/이현일/윤희은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