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딛고 달항아리 재현… "조선시대 도공 예술혼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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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장인 강민수, 15일부터 개인전17~18세기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아무 장식 없이 둥실하고 풍만하다. 여인네의 뽀얀 살결 같은 푸근함이 더욱 매력적이다. 하얀 달덩이처럼 미소를 뿜어내면 괜스레 안겨보고 싶어진다. 모태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40대 ‘백자 달항아리 장인’ 강민수 씨(46·사진)는 20대부터 전통 조선시대 도자기 미학을 재현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두 개의 반구(半球) 모양을 이어붙여 높이 40~60㎝ 안팎의 달항아리를 만들고 표면의 매끄러운 질감을 표현해내는 데 20년이 걸렸다.
오는 15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막하는 ‘강민수’전은 20년 동안 흙과 불을 친구 삼아 살아온 도공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리다. 1층부터 2층까지 전시장을 채운 30여 점의 대형 달항아리는 모두 경기 광주 쌍령동 가마터에서 일군 근작이다. 물레로 위와 아래의 몸통(윗발, 아랫발)을 따로 만들기 때문에 약간 일그러진 듯한 달항아리 특유의 미학이 일품이다.
어린 시절 열병으로 청각장애를 가진 강씨는 20대 중반 단국대 대학원 도예과에서 조선시대 달항아리 재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귀 닫고 입 막은 채 묵묵히 물레질을 하며 ‘달항아리’에 매달렸다. 1998년 국제 공예공모전을 비롯해 사발 공모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잇달아 입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인공와우수술을 받아 청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강씨는 “수화 김환기 화백도 평생 백자 달항아리에 반해 그림 소재로 즐겨 활용했다”며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상의 멋과 슬기를 되살려내고 있다”고 말을 건넸다.
“가마에서 아래위 이음매가 터지거나 두께가 맞지 않아 주저앉기를 수백 번 했습니다. 소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 산비둘기 소리, 계곡물과 바람 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조차 그릇에 녹여내려 했죠.”
강씨는 올해까지 나온 완성품이 겨우 300점 남짓일 정도로 스스로에게 까다롭다. 그는 “마음에 안 들어 깨부순 도자기만 수만 개에 달할 것입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감을 얻었지만 어떻게 해서 비법을 찾게 됐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삶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그는 달항아리 특유의 미감을 살려내기 위해 장작가마에 껍질을 벗긴 소나무로만 불을 때고, 흙도 전남 강진·무안을 비롯해 강원 양구 등에서 가져온 백토만을 고집한다. 장작가마에서 구우면 소나무가 타면서 재가 날아가 달항아리에 붙어 녹아 투박한 느낌을 내고, 백토를 써야 은은한 유백색 빛깔이 나오기 때문이다.
“장작가마의 불길은 일정하지 않아 건조 당시의 모습이 왜곡되면서 미세한 선이 만들어지는데 오히려 그 뒤틀림이 달항아리의 미감을 더 키워줍니다. 노변(爐變·불의 조화)의 스릴을 즐기는 장점도 있습니다.” 전시는 3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