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당신의 멘탈은 괜찮습니까?

4050 관리자급 직장인 정신건강 '악화'
자신에게 친절하고 유연성 키우세요!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조언
맡은 역할 많아서 '불안한 중년' 삶에 위로를 주는 대상은 배우자
중년에 접어들면 직장뿐 아니라 좋은 가장 역할에 관심 기울여야
친구 셋·커뮤니티 둘·기부 하나 '321 프로젝트'도 필요
부모만 봉양하면 삶을 돌아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 대학 등록금과 취업 준비 비용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자녀가 결혼한 뒤에도 부양 의무는 끝나지 않는다. 맞벌이로 바쁜 아이들 때문에 손주는 또 다른 자식이 됐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해 진급했지만 성과 압박은 매일 어깨를 짓누른다. 상사 지시를 따르다 보니 후배들에게는 점점 나조차 싫어하던 상사가 되고 있다. 그러다 삐끗하면 ‘꼰대’ ‘개저씨’ ‘김여사’가 돼버리는 게 현실이다.

삼성서울병원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진심》(한경BP)에 담긴 한국 40~50대 중년층의 삶이다. 연구소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법을 내놨다. 중년층에게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리커넥트(재연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정신건강 지표 나빠지는 4050

국내 40~50대 정신건강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조울증 환자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 40~50대다. 질병관리본부가 조사한 결과, 응급실을 찾은 자살·자해 시도자 중 40대 비율이 19.7%로 가장 높았다.

직장에서 관리직급이 되면 정신건강이 급속히 악화된다.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근로자 정신건강 자료에 따르면 국내 45~54세 직장인 정신질환 발병 건수는 35~44세보다 3.52배 많다. 미국(1.54배) 캐나다(1.19배)보다 현저히 높은 수치다. 홍진표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은 “중년 직장인은 젊은 층보다 혜택을 많이 받고 편한 세대로 보이기 쉽지만 직장을 잘 다니는 사람들조차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관심 많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연구소는 4050세대의 정신건강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2년 전부터 해피 리더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과 함께 30대 과장급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40세 이상 관리직급 직장인 3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도 했다.

4050세대는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관리에는 힘을 쏟지 못했다. 시간이 없는 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젊은 직장인보다 자신이 직접 하지 않은 일의 결과에도 많은 책임감을 느꼈다. 은퇴한 뒤에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평균 5.9명, 동료는 5.5명이었다. 삶에 위로를 주고받는 대상은 배우자였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해도 가족이 자신을 인정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65%에 불과했다. 세 명 중 한 명은 돈을 벌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학습도 필요하다. 홍 소장은 “가족에게 적절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며 “직장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좋은 가장, 좋은 아버지 역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삶을 리커넥트해야 할 때

한국의 4050세대는 맡은 역할이 너무 많아 불안한 중년이다.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대상은 크게 세 가지다. 성과에 대한 압박, 부서나 상사·후배와의 관계를 위한 사내영업, 퇴사다. 직장생활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져 무기력감, 우울감, 능률 저하 등이 생기는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연구소는 이를 막기 위해 “스스로에게 친절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 돌아보기 위해 직장생활 그래프를 그려보는 것도 좋다. 1분 안에 자신을 위해 10만원을 써야 한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쓸지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직장 외의 관심사로 눈을 돌리는 방법이다. 은퇴 후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리커넥트 훈련을 위해 진정한 친구 셋, 커뮤니티 둘, 기부할 곳 하나를 만드는 ‘321 프로젝트’도 추천했다. 노지혜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연구원은 “가정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는 역할 바꾸기는 유연성을 키우는 데 좋다”며 “엄마만 하던 요리를 아빠가 하고, 운전 담당을 아빠에서 엄마나 아들로 바꾸면 가족이 한 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