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파워독서] 亞 금융·물류허브 싱가포르, 그 뒤엔 실용주의자 리콴유가 있다

비전과 리더십으로 무장하다

근현대史 소용돌이 겪으며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성장한 배경엔
리콴유라는 지도자 있었기 때문
영어 공용화 일관되게 추진하고
이상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주의 견지

싱가포르 역사 / 강승문 지음 / 가람기획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경영자 한 사람이 회사를 세울 수도 있고 넘어지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지도자는 정말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오늘은 리콴유라는 걸출하고 청빈한 지도자 한 명의 비전과 리더십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승문의 《싱가포르 역사》는 싱가포르가 걸어온 길을 정리한 현대적 의미의 역사서다. 저자는 싱가포르의 부침을 근대사 개막 이전, 개항 초기 개척시대, 해협식민지 시대, 영국 본국 직속 식민지 시대, 일본 점령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기, 독립 이후 등 모두 9장으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1965년 8월9일, 싱가포르는 독립의 길로 들어선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외세의 압제와 싸워 쟁취한 것이 아니라 어렵게 이룬 말레이시아연방 가입이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어찌할 수 없이 독립국가의 길을 걷게 됐다. 독립의 날에 비통한 심정으로 독립 기자회견을 하던 리콴유를 나이 든 세대들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출발한 싱가포르는 인구 약 560만 명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에 달하고, 아시아 금융과 물류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나라로 우뚝 섰다.

이 책은 싱가포르 역사서지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리콴유라는 인물 중심으로 책을 읽기를 원할 것이다. 이런 독자라면 저자의 또 다른 책인 《싱가포르에 길을 묻다》(2014년)를 권하고 싶다. 싱가포르 근현대사와 산업화 그리고 리콴유의 역할을 더 세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콴유는 철두철미한 실용주의자였다. 20세기 100년 역사는 이념과 이상에 치우친 이상주의적 지도자들이 남긴 폐악으로 점철돼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사회를 대상으로 거대한 사회적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 줬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통 또한 이상주의에 경도된 지도자가 민족 전체에 세대를 두고 어떤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한 리콴유는 청빈함에 바탕을 둔 비전의 인물이었다. 그는 비전 달성 수단으로 철두철미한 실용주의 노선을 따랐다. 리콴유가 일관되게 추진한 영어공용화와 이중언어 정책은 오늘날 싱가포르인들이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 날개를 달아줬다.리콴유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합한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거듭 확인시켜 준다. 그의 유언은 자신이 평생 살던 작은 집조차 사후에 허물어뜨리라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국부로 불리는 인물이라면 당연히 사후에도 대접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지도자와 달리 자신의 집이 유지됨으로써 더 효과적인 용도로 재개발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실용주의자다운 발상이다. 오늘날 한국은 현실과 당위 사이에 방황하는 국면에 들어서 있다. 싱가포르 역사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데 일익을 할 것으로 본다.

공병호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