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의 데스크 시각] 박근혜의 김종인 vs 문재인의 김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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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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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보수 학자 김광두를 영입한 것 역시 절묘했다. 표의 확장성에선 적지 않은 효과가 있었다. 박근혜에게 김종인은 선거용에 불과했지만 문 대통령에게 김광두는 선거 전략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문 대통령의 삼고초려에도 거절하던 김광두가 마음을 돌린 것은 “경제가 잘 되도록 와서 균형을 잡아달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에 이기고 나서도 김광두에게 중책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을 맡겼다. 인선을 발표할 때는 직접 김 부의장 손을 잡고 청와대 춘추관에 나와 “저와 다른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던 분이지만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손잡아야 한다”고 했다.보수학자 영입 절묘했지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적어도 현재까진 그렇다. 김 부의장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에서 본인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정책이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가면 본인이 반대 쪽으로 잡아당겨 최소한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거나, 현 정부 정책 참모나 장관들이 놓친 아젠다를 찾아 빈틈을 메우는 게 본인의 존재 이유라고 본다. 새 정부가 출범 후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정책을 쏟아낼 때 ‘산업 구조재편’을 고민하며 일선 부처 관계자를 불러 수차례 회의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문 대통령은 김 부의장 인선을 발표할 때 “경제를 살리는 데 국가 역량을 모으기 위해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활성화하려 한다”고 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경제 관련 주요 정책 방향을 대통령 곁에서 보좌하는 헌법상 최고 자문기구다. 일부에선 미국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회(NEC)처럼 역할이 커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김 부의장도 “문 대통령에게 NEC를 모델로 한 ‘한국형 NEC’안을 설명드렸고, 이에 (대통령이) 공감했다”고 한 적이 있다.문재인 정부 지렛대 역할 할까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이 지났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한 번도 소집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문회의는 위원 구성조차 안 돼 공식 출범을 못하고 있다. 30명의 자문위원 명단이 최근 청와대에 올라갔지만 다른 인선에 밀려 감감무소식이다. 김 부의장이 9월에 열겠다던 ‘산업 구조재편’ 회의도 그냥 지나갔다. 주변에선 청와대 참모 견제로 김 부의장 역할이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김광두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면전에서 ‘쓴소리’를 던졌다가 내쳐진 고집 센 학자다. 그를 아는 사람은 김광두의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나름대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정을 이끌면서 측근 참모그룹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스스로 견제하기 위해 이헌재 정덕구 같은 보수 관료를 불러 “우리를 오른쪽으로 끌고가라”고 부탁하곤 했다. 문 대통령이 김 부의장을 박근혜의 김종인처럼 ‘팽’시킬지, 아니면 정부 성공에 요긴하게 쓸지 자못 궁금하다.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