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케빈 플랭크 스포츠 의류브랜드 언더아머 CEO

조던 스피스·스테픈 커리가 입은 옷 뭐지?
'선수들 경기력 향상시키는 옷' 입소문 타고
나이키·아디다스·푸마 등과 어깨 나란히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hankyung.com
국민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생활체육 저변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 달리기 같은 개인 운동부터 야구, 축구, 농구까지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는 매년 늘고 있다. 스포츠 동호인들은 몸은 못 따라 줄지언정 마음만큼은 ‘나도 프로처럼 멋지게 운동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스포츠 의류·용품 회사들은 프로선수들을 앞세워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같은 유명 브랜드가 경쟁을 벌이던 1996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한 스포츠 의류회사가 탄생했다. 선수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무명 브랜드는 이제 연간 수십억달러 매출을 올리는 유명 브랜드로 성장했다. 전직 대학미식축구 선수였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케빈 플랭크(45)가 만든 언더아머 이야기다.◆땀 배출 원활한 신소재 티셔츠로 사업 시작

1972년 미국 메릴랜드주 켄싱턴에서 태어난 플랭크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명문 사립고등학교에서 음주난동을 부려 퇴학당한 그는 고등학교를 두 번 옮긴 끝에 메릴랜드주립대에 입학했다. 어릴 적부터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특기생으로 입학하지 못하고 일반 학생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플랭크는 자신을 ‘경기장에서 가장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미식축구는 움직임이 격렬한 만큼 흘리는 땀도 많다. 면 소재로 된 속옷은 금세 축축해져 운동 능력을 떨어트리기 일쑤였다. 이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플랭크는 면 대신 합성 섬유를 활용한 운동 전용 속옷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회사 이름이 ‘속에 입는 갑옷(under armour)’이란 뜻인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첫 제품을 만든 그는 대학 시절 밸런타인데이에 장미를 팔고 음악 콘서트에서 티셔츠를 팔아 모은 1만7000달러를 종잣돈 삼아 회사를 창업했다.

◆유명 브랜드 따라하기 대신 틈새시장 공략업계 내 전통의 강자들이 운동을 넘어 패션으로 영역을 넓힐 때, 사람들이 스포츠 언더웨어는 펄럭거리지만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언더아머는 오로지 기능성에 집중했다. 품질에 자신감이 있었던 플랭크는 선수 시절 인맥을 활용해 친구들에게 “언더아머 제품은 근육에 적절한 압박을 가하면서 땀 배출까지 원활하다”며 “이 옷을 입으면 분명 경기력이 오를 것”이라고 홍보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자 조지아텍을 시작으로 노스캐롤라이나대, 플로리다주립대 등에서 주문이 이어졌다.

소규모 의류회사가 단숨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분야를 발굴해냈기 때문이다. 언더아머가 자사 의류를 스포츠웨어가 아니라 퍼포먼스 기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선수들이 입는 옷이란 입소문 덕에 매출은 급증했고 운동할 때는 컴프레션(압박) 티셔츠를 입는 게 좋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 됐다. 이 분야의 잠재력을 뒤늦게 파악한 나이키와 아디다스도 부랴부랴 기능성 의류를 만들었다. 자본금 1만7000달러로 시작한 언더아머는 2010년 10억달러 매출을 돌파해 지난해 48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명성에 기대지 않는 언더독 전략으로 호감
스포츠 의류업계의 후발주자였던 언더아머는 2014년 아디다스를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언더아머의 급성장 배경에는 ‘언더독 전략’이 있다. 언더독은 스포츠에서 승리 확률이 적은 선수나 팀을 일컫는 말이다.

언더아머는 최고 수준의 선수를 모델로 기용하는 대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유망주에 투자하면서 선수와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란 이미지를 각인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다. 2013년부터 언더아머 후원을 받은 커리는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고 그가 입고 있는 브랜드 언더아머도 함께 인기가 치솟았다.

같은 해 골프선수 조던 스피스를 후원한 언더아머는 스피스가 2015년 미국 프로골프(PGA)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흥행 대박을 쳤다. 당시 미국 경제지 포천은 “마스터스 공식 우승자는 스피스지만 실질적인 우승자는 그가 19살 때 4년 후원 계약을 맺은 언더마어”라고 평했다. 선수 이름값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가능성에 투자한 결실을 본 셈이다.

◆매출 부진은 신기술로 극복할 것

언더아머는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이후 1년 동안 매출 하락을 겪는 등 영업에서 고전하고 있다. 매출 상당수를 차지하는 북미 지역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브랜드들이 스포츠와 레저, 패션이 결합된 ‘애슬레저(athleisure, 운동+레저)’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때 언더아머는 유행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미식축구화, 농구화 등 신발 분야의 매출 증가세가 주춤한 것도 좋지 않은 신호다. 한때 절대강자 나이키를 위협하는 ‘언더독’ 언더아머였으나 지난해 아디다스에 2위 자리를 내줬고, 지금은 푸마에 역전당할 처지에 놓였다.

상황은 좋지 않지만 플랭크 CEO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의류와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차세대 운동복을 준비하고 있다. 특수 섬유로 만든 옷을 입고 운동하면 자동으로 몸 상태와 운동 기록을 스마트 기기에 저장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처럼 언더아머는 기능성 의류 제조 업체에서 피트니스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언더아머는 IT 스포츠 웨어에 앞서 지난 1월 휴식할 때 입으면 피로 회복을 돕는 ‘슬립웨어’를 소개했다. 섬유에 함유된 바이오세라믹 입자가 빠른 신체 회복을 돕는 원리다. 운동 중에 도움이 되는 옷을 만들기 시작한 언더아머는 운동 후 회복을 돕는 의류까지 만들면서 철저히 기능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금도 언더아머의 목표는 나이키를 제치고 스포츠 브랜드 1위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계속해서 틈새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