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유령 같은 작용"…양자역학으로 본 생명의 신비

생명, 경계에 서다

짐 알칼릴리, 존조 맥패든 지음 / 김정은 옮김 / 글항아리사이언스 / 448쪽 / 2만2000원
스웨덴 중부에 사는 유럽울새는 겨울이 다가오면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떠난다. 도착지는 지중해 근처 어디쯤이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이르면 이듬해 다시 올 수 있도록 주변 풍경을 머릿속에 새긴다. 원서식지로 돌아올 때도 정확히 길을 기억해 둔다.

여기엔 놀라운 비결이 숨어 있다. 유럽울새의 눈에 들어 있는 특정 화학물질은 적당한 에너지의 빛을 흡수하면 전자들의 배열을 순식간에 바꾼다. ‘양자 얽힘’ 현상이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양자가 서로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얽힌 양자들은 지구 자기장의 방향성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유럽울새는 이를 통해 자기력선과 지표면이 이루는 경사의 각도를 측정하는 ‘경사나침반’처럼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낸다.《생명, 경계에 서다》는 ‘양자생물학’이란 다소 생소한 학문을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통해 소개한다. 저자는 영국 서리대의 이론물리학자 짐 알칼릴리와 분자유전학자인 존조 맥패든이다.

양자생물학은 ‘양자역학’을 생물학에 접목한 것이다. 양자역학은 어떤 물체들이 서로 떨어져 두 장소에 존재하지만 통과할 수 없는 장벽을 통과하기도 하며, 멀리 있는 다른 물체와 연결되기도 하는 현상을 이른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현상에 대해 “유령 같은 작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각 생물체에도 양자역학 현상이 작용한다.

생명은 거센 폭풍이 부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와 비슷하다. 이 배에는 거의 40억년의 진화로 다듬어진 유전 프로그램이라는 노련한 선장이 타고 있어 다양한 깊이의 양자 영역과 고전 영역을 항해할 수 있다. 생명은 폭풍우를 피하기보다 끌어안는다. 양자의 돌풍과 강풍을 모아 돛을 부풀리는 것이다. 이 양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무작위 운동을 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양자 얽힘과 같은 현상들이 발생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과학자는 정교한 양자 현상이 생물학에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묵살했다. 하지만 최근 점점 더 많은 과학자가 이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지금까지 양자역학적이라고 묘사한 모든 생물체의 미래를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울새뿐만 아니라 남극의 얼음 아래에서 살아가는 세균, 쥐라기의 숲을 어슬렁거리던 공룡 등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양자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저자들은 “새로운 연구 영역이 많이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며 앞으로 양자생물학은 더 빠르게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