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000억 수입 미술품시장 잡아라

화랑가, 해외작품 판매 경쟁 '후끈'

40~50대 기업인 컬렉터, 해외작가에 관심
외국 유명화랑 한국 사무소 개설 '러시'
국제 '마이클 주', 현대 '빔 델보이'전 등 예정
캐나다 화가 브렌트 웨든의 2017년 작 ‘제목 미정’(To be titled). 다음달 1~30일 서울 팔판동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웨든 개인전에 출품된다.
국내 미술 경기의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해외 그림의 인기는 뚜렷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품 애호가와 아트딜러, 기업이 해외에서 사들인 미술품은 전년보다 81.9% 늘어난 3억6000만달러(약 3700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7억2300만달러) 이후 최대다. 40~50대 미술애호가들이 투자 리스크가 작고 환금성이 뛰어난 유망 해외작가 작품에 눈을 돌리는 데 따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연간 3000억원대 규모의 미술품 수입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상업화랑들의 마케팅 경쟁이 뜨겁다. 미국 등 세계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국제 미술시장의 호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자 미국 유럽 등 유명 화랑들은 해외 미술품을 국내에 판매하는 사무소를 내거나 지점을 개설, 국내 컬렉터 잡기에 나섰다. 국내 화랑도 해외 작가와 국내 판매 전속계약을 맺거나 국내 작품 판권을 확보하고 전시회를 잇따라 기획하고 있다.◆다음달 리먼머핀 서울점 개설

외국 화랑들이 해외 인기작가 작품을 들여와 한국의 큰손 컬렉터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되자 국내 미술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메이저 화랑 리먼머핀은 다음달 14일 서울 삼청동에 서울사무소를 개설해 프랑스 작가 카데르 아티아를 비롯해 테레시타 페르난데스와 헤르난 바스(미국), 왕게치 무투(케냐)의 작품 판매를 시작한다.지난 3월 서울 이태원동에 문을 연 페이스갤러리는 미국 작가 타라 도노반의 개인전에 이어 다음달 6일부터 중국 작가 숭동의 개인전을 연다. 프랑스 파리에 본점을 둔 페로탱갤러리의 서울점도 일본 작가 매드사키의 신작들을 걸고 고객 잡기에 나섰다. 외국 화랑들의 이런 판촉전은 젊은 기업인과 강남 부유층 주부들의 ‘미술품 해외직구’ 물량을 빠르게 대체하는 전략적 포석으로 보인다.

◆학고재는 구보타, 마류밍 展

국내 화랑도 외국 작가들의 작품 판매 마케팅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해외 유명작가를 국내에 소개하는 대표적 화랑으로 꼽히는 국제갤러리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주를 비롯해 로니 혼, 독일 사진작가 캔디다 회퍼, 네덜란드 디자이너 요리스 라만을 잇따라 ‘등판’시킬 계획이다. 미국의 뉴페인팅 작가 줄리앙 슈나벨과 로버트 인디애나, 중국의 아이웨이웨이, 프랑스의 베르나르 브네 등과 교류해온 갤러리 현대는 빔 델보이(벨기에)와 이반 나바로(칠레)를 초대해 판촉전을 벌일 예정이다.

학고재갤러리 역시 해외 유명작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학고재는 세계적 사진가 그룹 매그넘 회원인 구보타 히로지(일본)와 마류밍(중국)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흥행몰이’에 귀추가 주목된다. PKM갤러리는 동성애를 암시하는 코드로 주목받은 미국 작가 헤르난 바스 작품전에 이어 브렌트 웨든(캐나다), 토나 후앙카(미국), 토비 지글러(영국) 등 해외 유망작가들을 잇달아 초대해 컬렉터 잡기에 나선다.

중견 화랑들도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해외 유망 작가를 줄줄이 ‘출전’시키고 있다. 아라리오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완화 기류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중국 30대 작가 가오레이를 선발해 지난 23일 개인전을 시작했다. 금산갤러리(오스카 오이와·아오키 노에·마쓰에다 유키), 리안갤러리(제이콥스 케세·이키키 스미스), 바톤갤러리(피터 스틱버리), LVS갤러리((보딜 만츠) 등도 유망 작가의 전시를 열거나 준비 중이다.◆침체된 시장에 활력소 기대

화랑들의 치열한 해외 미술품 판매전은 새로운 컬렉터들을 찾아내 시장 규모를 늘리고 거래 활기도 되살리는 등 선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좀체 풀리지 않던 국내 미술시장에 국내 작가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온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미국 유럽 홍콩 등 해외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해외 미술품 수요층이 늘고 있어 국내 시장에도 좋은 신호”며 “다만 가뜩이나 힘든 국내 작가들은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