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부 정책에 탄소배출권 '거래 절벽'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
21개사 정부에 건의문…"사업 계획도 못 짤 판"

정책 불확실성 가중되자 여유분 있는 기업도 '버티기'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하반기 거래량 300만뿐

기재부는 시장개입 시사…"과징금 내는 일 없도록 할 것"
최근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급등한 이유는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발전·석유화학업계 등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들은 이를 시장에서 사들여야 하는데, 배출권이 남는 업체들이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 6월 2018~2020년도 3개년치 배출권 할당량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脫)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 등을 담은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내년 6월에 발표하기로 하면서 배출권 할당량 발표도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다.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는 내년으로 한정된 임시 할당량을 올해 말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불안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배출권이 남아도는 기업들이 내년도에 얼마나 배출권을 할당받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향후 감축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남는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일부 기업은 추후 배출권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판단해 추가로 사 모으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배출권 거래량은 300만t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발전업종이 할당받은 탄소배출량이 약 2억2587만t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전력, 남동발전, 중부발전, SK E&S 등 발전업체를 비롯해 현대제철 LG화학 한화케미칼 삼표시멘트 등은 지난 28일 정부에 제출한 건의문을 통해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들은 중장기 사업계획을 제대로 작성하는 못하는 등 큰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실제 할당량이 정해지지 않았고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도 등락 폭이 커 예산 확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과징금 부담도 크다.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이 시장에 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시장 가격의 3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야 한다.

배출권 부족 기업들은 정부가 보유한 배출권 예비분 1430만t을 시장에 공급해 배출권 가격을 안정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체들은 건의문에서 “배출권 시장은 근본적으로 정부에서 만든 인위적 시장이며 국가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 요소”라며 “수급 불균형 발생 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반면 정부는 당장 배출권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수요량 대비 공급량은 넉넉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배출권 거래 차익을 통해 이익을 내려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 인상이 계속되면 업계가 요구하는 시장 개입 가능성도 시사했다.

황인웅 기획재정부 배출권시장팀장은 24일 열린 ‘제2차 배출권 할당계획 수립 방안 공청회’에서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기업이 배출권을 구하지 못해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정부 발표 이후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만큼 수급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언제 어떻게 시장 개입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는 만큼 관련 기업의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