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윤리' 규제 푸는 정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숨통' 트나

신성장산업 규제 개혁

난치·중증질환에만 허용되는 줄기세포·유전자치료제 연구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기로

로봇·AI 등 4차산업혁명 기술
진료 현장에 신속한 도입 위해
신의료기술 평가 체계도 바꿔

"난자 사용 규제 푸는 게 핵심"
의료계, 환영속 짙은 아쉬움도
정부가 배아줄기세포·유전자 치료제 연구 규제를 풀기로 한 것은 현행 생명윤리법이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규제에 막혀 해외로 나간 연구진이 잇따라 치료 성과를 낸 것도 자극제가 됐다.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꽉 막혔던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연구에 숨통이 트일지 기대된다.
유전자·배아줄기세포 연구, 질환 제한 없앤다현행 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할 수 있는 질환은 다발성경화증, 헌팅턴병, 선천성면역결핍증, 심근경색 등 20여 개다. 연구자가 이들 질환 치료제 개발 연구를 하려면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와 보건복지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연구 가능 질환이 한정된 데다 동결·미성숙 난자만 사용할 수 있어 제약이 지나치다는 주장이 계속됐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지난해 복지부 승인을 받은 이동률 차의과학대 교수팀의 연구가 유일하다.

차세대 치료기술로 불리는 유전자가위 기술도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유전자가위는 질환의 원인 유전자만 골라낸 뒤 교정해 질환을 치료하는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유전자치료제 연구 범위를 규정한 생명윤리법에 막혀 유전질환, 암, 에이즈 등 중증질환 연구만 할 수 있다. 이마저도 이전에 치료제가 없거나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월등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등은 유전자가위 연구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이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배경이다. 지난 8월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겸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OHSU)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와 함께 유전자가위로 비후성 심근증을 치료하는 연구에 성공했다. 김 단장이 개발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것이지만 해당 연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이뤄졌다. 김석중 툴젠 이사는 “노인성 황반변성, 당뇨 망막병증 등의 질환은 유전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임상 연구를 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며 “질환 제한이 풀리면 이 같은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복지부는 생명윤리법 개정을 위해 지난 3월부터 의료·과학계, 산업계, 윤리·법학·종교계 등이 참여한 민관협의체를 운영해왔다. 30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공개한 개선안은 민관협의체와 수개월간 협의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내년 상반기 생명윤리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AI 등 신기술 진료 활용 늘어날 듯

신의료기술 평가 체계도 바꾼다. 로봇,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유망 기술을 진료현장에 신속히 반영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과학 기술을 환자 진료에 활용하려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을 통해 신의료기술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지 않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하지만 기술 인증에 필요한 임상 자료 등 데이터 확보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빠르게 바뀌는 과학기술을 진료에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복지부는 해당 기술이 가치 있다고 판단되면 신의료기술로 먼저 인정하고 3~5년간 쌓인 진료 데이터 등으로 재평가하기로 했다.

연구자들 “자율성 더 높여야”

의료계는 “환영한다”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동결·미성숙 난자로 제한된 난자 사용 규제까지 풀어야 한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한 줄기세포 연구진은 “국내에선 인공수정 등을 하고 남은 난자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영국 등은 연구 목적의 난자 기증도 허용하고 있다”며 “배아줄기세포 연구 전체로 보면 변죽만 울린 셈”이라고 지적했다.유전자 치료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김 이사는 “질환 범위를 풀었다고 해도 치료법이 없거나 다른 치료법보다 현저히 우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남았다”며 “다른 치료법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어떤 기준인지 모호하다”고 했다.

신선난자 사용 허용 목소리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여성건강 부작용 등의 문제로 종교계, 윤리계에서 반대했다”며 “사회적 합의가 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유전자 치료제 연구와 관련해서는 “기존 치료제 대비 효과성이라는 부분이 불명확하다는 주장이 있어 이를 명확히 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