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국 하층 백인들, 어떻게 '티파티' 지지자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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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의 이방인들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 유강은 옮김 / 이매진 / 399쪽 ㅣ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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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연방정부의 도움을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정반대다. 빨간색 주의 연간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연방 자금이다. 루이지애나는 44%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연방 자금을 환영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면서도 환경보호 강화, 지구온난화 방지에 반대한다. 군대를 빼면 정부의 역할은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조세저항운동을 벌이는 티파티의 열성적 지지자가 된다.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이런 역설적 상황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진보적 학자의 공감형 여행기다. 저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UC버클리의 사회학과 명예교수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진보적이며 교육수준이 높고 개방적인 버클리에 사는 그는 이런 역설의 근원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루이지애나주였다. 그는 2011년부터 5년간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 등지에서 티파티 핵심지지자 40명과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20명을 인터뷰해 4690쪽 기록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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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봐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거대한 역설’의 이면을 읽으려면 진보와 보수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밀착형 인터뷰를 통해 저자가 읽어낸 풀뿌리 극우들의 내면에는 이런 게 있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긴 줄의 가운데쯤에 인내심을 갖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이가 많고 기독교도이며 대부분 백인 남성이다. 언덕 위에는 모두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 지루한 기다림 속에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줄 뒤에 서 있던 유색인, 특히 흑인이다. 연방정부의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 복지수당, 무상급식 등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다. 여성, 이민자, 난민, 공공부문 노동자도 새치기를 한다. 이들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연방 정부다. 배신감과 함께 화가 치민다.저자는 “하위 90%의 사람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기계는 자동화와 공장의 해외 이전, 노동자들에 맞선 다국적 기업의 증대된 힘 때문에 멈춰선 상태였다”며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1950년에 가동을 멈췄고, 백인 남성과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경쟁이 고조됐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정체된 아메리칸 드림이 특히 취약한 생애주기인 50~70대 우파 사람들에게 타격을 가했다는 것. 진보 진영이 이들을 ‘얼빠진 촌뜨기 노동자’ ‘가난뱅이 흑인’ ‘일자무식 남부 맹신자’ 등으로 조롱하는 것도 두 진영의 벽을 쌓는 요인이다.
결국 ‘자기 땅에 사는 이방인’ 신세가 돼버린 이들이 극우 성향의 티파티를 지지하게 됐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이처럼 잔뜩 쌓여 있는 불쏘시개에 불을 붙여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갈수록 견고해지는 보수와 진보의 벽을 허물려면 이런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