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무역의 날] "한국 기업, 수출시장 다변화·제품 고급화로 보호주의 파고 넘는다"

'무역 1조달러 시대 수출' 좌담회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뚫고 한국 기업들이 선전 중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에도 국내 수출액은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의 범용 제품으로는 대체할 수 없도록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하고, 중국과 미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한 덕분이다.

사회=허원순 논설위원
내년에도 세계 경기 회복과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호조 등 호재는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하락,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언제 다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게 무역업계의 분석이다.

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사는 5일 ‘제54회 무역의 날’을 맞아 ‘무역 1조달러 시대 수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김영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 정탁 포스코 전무(철강사업전략실장), 조임래 코스메카코리아 회장, 이재원 케이맥 사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봤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좁은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수출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사회)=올해 무역 성과를 평가해 주십시오.▶김영삼 실장=올해는 정부 출범과 동시에 3년 만에 무역액 1조달러를 돌파하게 됐습니다.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수출이 증가한 이유는 수출 품목 및 시장 다변화에 따른 효과입니다. 8대 신산업 중 8개 품목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고, 7개 품목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1~10월 전년 대비 수출 증가율은 반도체(55.6%)뿐만 아니라 선박(36.7%) 석유제품(30.3%) 석유화학(24.3%) 철강(22.7%) 디스플레이(12.1%) 등이 골고루 늘어났습니다. G2(중국 미국) 수출 비중은 줄어든 반면 아세안 중남미 중동 인도 CIS(독립국가연합) 등 ‘남북 교역축 신흥시장’ 수출 비중이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정탁 전무=철강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의 표적이 됐습니다. 미국의 열연, 냉연, 도금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로 미국지역 수출은 지난해 대비 4억4000만달러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수출액은 지난해 99억달러에서 올해 112억달러로 전년 대비 14%가량 늘어날 전망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자동차강판 등 월드프리미엄(WP) 제품을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전략을 추구하고 수출 단가를 인상한 덕분입니다. 중국에서도 사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습니다.

▶조임래 회장=코스메카코리아는 화장품 ODM(제조업자개발생산) 회사입니다. 2007년 기능성 비비(BB)크림을 최초로 개발해 일본과 중국, 미국과 유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사드 사태’로 올해 매출은 줄었지만 국내 화장품업계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이나 유럽, 동남아시아나 중동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내 제조업체의 가장 큰 강점은 연구개발(R&D)입니다. 지난해 초 프랑스 합작사를 차리려고 보니 프랑스 화장품 제조업체는 연구원이 20~3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150명가량 됩니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한국을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앞으로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뷰티 한류’를 이끌어갈 예정입니다.▶이재원 사장=케이맥은 디스플레이 패널 측정 및 분석 장비를 개발·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애플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채택으로 OLED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패널제조사들은 물론 중국 또한 신규 설비 투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 덕분에 케이맥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인 892억원을 달성했고 그중 수출이 약 47%(405억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고객사들이 세계 디스플레이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노하우를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고급화와 시장 다변화를 통해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돌파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수출이 우리 국민 경제에 얼마나 기여한다고 보십니까. 일자리 창출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요.

▶김정관 부회장=1~9월까지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78.5%입니다. 국제무역연구원이 최근 10년간(2006~2015) 존속한 제조업체 3418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출기업이 내수기업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합니다. 수출기업의 정규직 취업자 수는 10년간 12만5000명 증가해 6만5000명 증가한 내수기업을 크게 웃돌았습니다.▶사회=기업 현장에서 본 일자리 창출 효과는 어떻습니까.

▶조 회장=다른 회사는 구조조정을 할 때 우리는 채용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R&D 중심 회사기 때문에 고급 인력에 대한 채용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전년 대비 약 20%의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최근 한국과 중국에 각각 3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확장하고 있어 채용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정 전무=저희는 자동차업계, 조선업계 등에 소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수출 기업이어서 내수 제품 공급부터 수출에 연결됩니다.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 예년의 두 배 정도로 신규 직원을 채용할 계획입니다.

▶이 사장=지난해와 올해 급격한 수주 물량 증가로 채용 인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회사의 고용창출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9월에는 대전시에서 고용우수기업으로 인증받기도 했습니다.

▶사회=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 트렌드가 시작됐습니다. 무역의 ‘판’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기업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요.

▶김 실장=미래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산업은 스마트시티·자율주행차·에너지 신산업 등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신산업을 육성하고 수출 활성화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과감한 규제개선 △이종산업 간 융합 △선(先)국내 시장 트랙레코드 확보 후(後)해외 진출 전략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국내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해외 수출도 더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 전무=포스코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등에 필요한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기차의 소재 경량화부터 앞으로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배터리용 음극재, 양극재 생산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 회장=사람마다 피부 타입이 제각기 다릅니다. 최근 IT기기와 화장품을 결합한 제품이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습니다. 고객의 피부 타입을 분석해 알맞은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이런 제품이 앞으로 많이 발전할 예정입니다. 생산성 향상 및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스마트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화장품 분야에서는 선도적인 시도입니다.

▶사회=내년에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통상 이슈가 굉장히 부각될 전망입니다.

▶김 실장=한·미 FTA 재협상이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한국과 중국이 한·중 FTA 서비스 협상 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TPP11(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등은 한국의 경제 지도를 넓힐 좋은 기회입니다. 그 밖에도 원화 강세, 고금리, 유가 상승 등 ‘삼중고’가 한국의 수출 환경에 변수로 작용할지 모릅니다. 업계가 힘을 모아 통상 압력에 국가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수출을 늘려가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사회=각 기업의 내년도 전망과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조 회장=올해는 미국 동남아 중동 러시아 등 세계 거래처를 67개국에서 87개국으로 늘리고 새로운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미국에선 자외선 차단제 등 화장품에 대해 OTC(약국이 아니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 간단한 의약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 인증을 받도록 했습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우선주의로 이런 규제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 전무=주요 수출국의 각종 무역 제소 및 고율의 관세 부과로 수출 여건은 나빠지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 열연, 냉연 연례재심 및 무역확장법 232, 201조 동시 발동 리스크가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수입규제 조치가 자동차 등 현지 철강 수요 산업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될 수 있음을 현지 정부에 적극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율 역시 수출 기업의 경쟁력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부분입니다.

▶사회=마지막으로 정부에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김 부회장=정부는 기업가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이는 곧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게 노동개혁입니다. 쉽지 않은 과제지만 정부가 꾸준히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제조업의 미래가 살아납니다. 서비스산업 육성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각종 규제 때문에 의료산업 등 서비스산업 수출이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정리=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