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원 "인공지능 덕에 빅5병원 의료쏠림 깨는 탈중앙화 시대 열었다"

길병원, 왓슨 도입 1년 심포지엄
1년간 타병원 암 진단 환자, 37명 길병원 찾아
심평의학, 임상시험 격차는 여전히 한계
"왓슨포온콜로지를 도입한 뒤 길병원에 암 치료를 위해 찾았다가 다른 병원으로 가는 환자가 현저히 줄었다. 지역사회에서 암 치료 병원이라는 역할이 분명해지고 신뢰도 높아진 것이다."

이언 길병원 인공지능병원 추진단장은 5일 의료 인공지능(AI) 왓슨포온콜로지 도입 1년 간담회에서 "AI가 빅5 병원 중심 의료체계에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IBM에서 개발한 왓슨포온콜로지는 암 환자 치료를 돕는 AI다. 길병원은 지난해 12월 국내 처음 AI를 활용해 암 환자를 치료했다.

왓슨 도입 이후 길병원은 5대 암 중 3개 암(대장암, 유방암, 폐암) 진료건수에서 국내 10위권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지난해 10위권에 하나의 암종도 올리지 못했던 병원이 올해 3개 암종을 순위권에 올린 것은 길병원이 유일하다.

AI진료를 받기 위해 타 병원에서 길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었다. 백정흠 길병원 외과 교수는 "1년 동안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을 포함해 전국 의료기관에서 암 진단을 받은 뒤 추가 진료를 받기 위해 우리 병원을 찾은 환자는 37명"이라며 "이 중 15명이 실제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암 환자들 사이에서 길병원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백 교수는 이날 지난 1년 간 이 병원에서 치료 받은 대장암 환자 118명의 치료성적도 공개했다. 왓슨포온콜로지는 강력추천, 추천, 비추천 등 3개 항목의 치료법을 제시하는데 의료진이 선택한 치료법과 '강력추천' 항목이 일치하는 비율은 55.9%였다. 2009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치료 환자 일치율이 48.9% 였던 것과 비교하면 7%포인트 정도 높아졌다.

이에 대해 백 교수는 "IBM과 국내 데이터를 쓰지 않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왓슨이 학습해 일치율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의료진들의 수용도가 많이 변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이 AI의 판단을 신뢰하고 동조했다는 설명이다.

왓슨이 추천한 치료법까지 포함하면 대장암 환자 치료 의료진과 왓슨 간 일치율은 78.8%였다. 위암은 72.7%였다. 여전히 20% 정도 차이가 나는데 대해 백 교수는 "미국에서는 사용할 수 있지만 국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가이드라인에 막혀 쓰지 못하는 약이 많다"며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약이 차이나는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그는 "일부 환자는 의료비 부담 등의 문제로 다른 치료법을 선택하기도 했다"며 "방사선을 할지 말지 등에 대한 환자 선택이 다른 것도 영향을 줬다"고 했다.

길병원은 한국형 왓슨포온콜로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IBM과 파트너십 체결해 현지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장암을 포함해 길병원에서 1년 간 왓슨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557명이다. 대장암 환자가 153명으로 가장 많았고 유방암(146명), 위암(101명), 폐암(100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의 진료를 위해 길병원 의료진은 4031번 왓슨포온콜로지의 의견을 들었다.치료 환자의 46.6%가 3기 환자로 중증 암 환자들이 비교적 AI 진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왓슨 치료를 받은 환자 94%가 치료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길병원은 AI 진료실에서 6명의 의료진이 환자 및 보호자와 함께 데이터를 보며 꼼꼼히 진료하고 있다. 이에 대한 진료비는 다학제 진료비 15만원이 전부다. 환자는 이중 5% 본인부담금인 7500원만 내면 된다.

이언 단장은 "추가 진료비가 필요하지만 AI를 기존 의료기기의 범주에 넣기 어려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도 난감해하고 있다"며 "기존 다학제 진료 외에 AI다학제 항목을 만들어 진료비를 반영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길병원은 왓슨포온콜로지를 활용해 대장암, 유방암, 위암, 폐암, 자궁암, 난소암, 전립샘암, 방광암 등을 치료하고 있다. 내년에는 갑상샘암, 간암 등도 치료 범위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