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팔 대립 풀 충격요법" vs 아랍 "갈등 한꺼번에 폭발할 것"

트럼프, 예루살렘 수도 선언

중동정책 방향 튼 트럼프, 뭘 노렸나
이-팔 '2국가' 지지하면서도 이스라엘 손 들어줘
요르단 "질서 해치는 행위"…아랍국가들 강력 반발
전쟁 가능성 낮지만 하마스 '3차 인티파다' 나설 수도
7일 가자지구에서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 발표 직후 환영의 뜻을 밝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가자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다고 밝혀 또 다른 유혈 중동분쟁을 낳지 않을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존 중동정책인 ‘2국가 해법(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동시 인정)’을 지지한다고도 말했지만 표면적으론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줬다.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풀 ‘충격요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면 그동안 쌓여온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2국가 해법’ 포기했나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이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문제를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동안 2국가 해법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각자 나라를 세워 공존한다는 개념이다.

유엔은 1947년 총회에서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를 세우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1987년 팔레스타인에서 대규모 민중봉기인 1차 인티파다가 발생하자 세계가 분쟁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커졌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이스라엘을 몰아낼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각자 지역을 나눠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1993년 체결된 오슬로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물러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다. 이후 종착역 성격을 지닌 2개 국가 설립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자국민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무력충돌이 빈번했다.

이스라엘은 서예루살렘에 대통령과 총리 관저, 대법원, 의회 등을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2국가 해법에 따라 동예루살렘이 미래에 세워질 국가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인정한 것이다.

◆새 평화해법 나올까2국가 해법은 그동안 미국도 충실히 따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2주 전 연설에서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주권을 갖는 자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가 분쟁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인했다. 후임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 구상을 공식 정책으로 채택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계승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이 정책은 흔들렸다. 그는 지난 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지금의 2국가 해법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제외한 영토 대부분을 장악한 이스라엘을 이 지역의 유일한 국가로 인정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로선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나눠줄 이유가 없어졌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수도 문제는 우리(미국)가 정할 일이 아니고, 양쪽(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정할 문제”라며 “이 문제에 대해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수습하는 모양새다. 관건은 조만간 중동에 파견될 예정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구체적 행보와 현지 협상력이다.◆중동전쟁 촉발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변 국가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의 전통우방인 요르단까지 ‘중동질서를 해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터키는 이스라엘과의 단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중동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 긴급회의를 열어 사태를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중동 각국이 저마다 내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AP통신은 “아랍 지도자들이 미국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도전하는 시대는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평가했다.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예멘 등은 여러 해 이어진 내전으로 국외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보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부상에 대응하는 게 급선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다른 중동국가를 비난하며 이슬람의 새 리더라고 자처하는 이란의 대응이 가장 주목된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중심으로 ‘3차 인티파다’에 준하는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하면 이를 둘러싸고 미국·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이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