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법 때문에 기초연구도 못 해"…높아지는 개정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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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요구하는 과학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유전자 가위 등 신기술이 등장하고 있지만, 국내 과학자들은 12년 전 만들어진 생명윤리법에 발목이 묶여 제대로 된 기초연구조차 못 하고 있다. 관련 학계와 업계에서는 현재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체제를 바꾸는 대신 법 개정 이후 연구 윤리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신기술 못 따라가는 생명윤리법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과 공동으로 7일 국회에서 '제9회 바이오 경제포럼'을 열고 생명윤리법개정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서경춘 과기정통부 생명기술과장은 "전 세계는 바이오의약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초연구 분야에서도 유전자가위기술 등 신기술 기반의 혁신적 연구를 진행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생명윤리법에 따른 광범위한 연구 규제로 인해 혁신적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재생의학 시장은 2014년 111억5000만달러에서 연평균 23.7% 성장해 2021년 494억1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 시장은 2014년 2억달러에서 2022년 23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34.2%씩 성장하는 셈이다.
영국, 미국, 일본 등은 앞다퉈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의 경우 2015년 유전자편집기술을 활용해 비만유전자를 억제하는 연구를 한 데 이어 올해 유전자편집을 통해 유전병이 치료된 배아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국내 연구진들은 생명윤리법에 막혀 연구를 못 하고 있다.이날 전문가들은 생명윤리법의 문제점을 크게 △포지티브 규제 △기초연구와 임상시험 연구를 모두 막는 포괄적 금지 △중앙집권적 규제 등 세 가지로 뽑았다.
현재 생명윤리법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예외적으로 연구를 승인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체계다. 유전자치료, 배아(체세포복제배아) 연구 등이 희귀병 등 특정 질병만 허용돼 있다. 보존 기간(5년)이 지난 동결 잔여 배아, 보존 기간이 지난 동결 난자 등만 사용할 수 있다. 또 임상시험 연구뿐 아니라 기초연구도 막혀있다.
연구 허가를 받는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선진국의 경우 기관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만 받으면 되지만 국내의 경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 및 중앙행정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서 과장은 "포지티브 규제 방식 때문에 개정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신기술·신시장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유전자치료 질환 범위 규제 등 폐지해야"
이날 포럼에 참석한 대부분의 전문가는 생명윤리법의 이런 문제점에 대해 공감했다. 특히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소라 인하대 의대 교수는 "과학계 사람들뿐 아니라 규제 당국도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원하지만, 국회 내에서 법을 하나하나 검토하다 보면 막상 전환되기 어렵다"며 "국회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날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생명윤리법 개정에 관한 과학기술계 의견 수렴 결과에 따르면 과학기술계는 유전자치료 연구에 대한 질환 범위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배아, 생식세포 대상 생명현상의 이해 및 치료제 개발의 단서 확보 등을 위한 기초연구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만 연구를 허용하는 대신 배아, 생식세포 취득, 사용 과정에서의 인권과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IRB 등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생명윤리법은 2012년 전면개정을 통해 자율규제라는 방향을 잡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자율규제에 그쳤다"며 "완전한 자율규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감독을 위한 보호 체계, 연구 장기 추적·관리 체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향한 쓴소리 나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체세포핵이식행위를 할 수 있는 연구의 종류 등을 결정하고, 정책 전방에 영향력을 끼친다.
이동율 차병원 교수는 "생명윤리심의위원회 구성원 중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들이 적다"며 "심의를 할 때 관련 연구를 발표하면 이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계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기술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제경 서울대 수의대학 교수는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보다 현재 더 다양한 기술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기존 역할보다는 IRB 심의 이후 윤리적 문제가 있는지 등을 담당하는 식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도 나왔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부장은 "역할에 대한 고민을 자체적으로도 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연구계획서를 연구자만 믿고 허용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과학기술계의 의견과 규제 완화 건의를 생명윤리법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김근희 한경닷컴 기자 tkfcka7@hankyung.com
◆신기술 못 따라가는 생명윤리법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과 공동으로 7일 국회에서 '제9회 바이오 경제포럼'을 열고 생명윤리법개정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서경춘 과기정통부 생명기술과장은 "전 세계는 바이오의약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초연구 분야에서도 유전자가위기술 등 신기술 기반의 혁신적 연구를 진행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생명윤리법에 따른 광범위한 연구 규제로 인해 혁신적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재생의학 시장은 2014년 111억5000만달러에서 연평균 23.7% 성장해 2021년 494억1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 시장은 2014년 2억달러에서 2022년 23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34.2%씩 성장하는 셈이다.
영국, 미국, 일본 등은 앞다퉈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의 경우 2015년 유전자편집기술을 활용해 비만유전자를 억제하는 연구를 한 데 이어 올해 유전자편집을 통해 유전병이 치료된 배아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국내 연구진들은 생명윤리법에 막혀 연구를 못 하고 있다.이날 전문가들은 생명윤리법의 문제점을 크게 △포지티브 규제 △기초연구와 임상시험 연구를 모두 막는 포괄적 금지 △중앙집권적 규제 등 세 가지로 뽑았다.
현재 생명윤리법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예외적으로 연구를 승인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체계다. 유전자치료, 배아(체세포복제배아) 연구 등이 희귀병 등 특정 질병만 허용돼 있다. 보존 기간(5년)이 지난 동결 잔여 배아, 보존 기간이 지난 동결 난자 등만 사용할 수 있다. 또 임상시험 연구뿐 아니라 기초연구도 막혀있다.
연구 허가를 받는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선진국의 경우 기관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만 받으면 되지만 국내의 경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 및 중앙행정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서 과장은 "포지티브 규제 방식 때문에 개정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신기술·신시장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유전자치료 질환 범위 규제 등 폐지해야"
이날 포럼에 참석한 대부분의 전문가는 생명윤리법의 이런 문제점에 대해 공감했다. 특히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소라 인하대 의대 교수는 "과학계 사람들뿐 아니라 규제 당국도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원하지만, 국회 내에서 법을 하나하나 검토하다 보면 막상 전환되기 어렵다"며 "국회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날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생명윤리법 개정에 관한 과학기술계 의견 수렴 결과에 따르면 과학기술계는 유전자치료 연구에 대한 질환 범위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배아, 생식세포 대상 생명현상의 이해 및 치료제 개발의 단서 확보 등을 위한 기초연구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만 연구를 허용하는 대신 배아, 생식세포 취득, 사용 과정에서의 인권과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IRB 등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생명윤리법은 2012년 전면개정을 통해 자율규제라는 방향을 잡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자율규제에 그쳤다"며 "완전한 자율규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감독을 위한 보호 체계, 연구 장기 추적·관리 체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향한 쓴소리 나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체세포핵이식행위를 할 수 있는 연구의 종류 등을 결정하고, 정책 전방에 영향력을 끼친다.
이동율 차병원 교수는 "생명윤리심의위원회 구성원 중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들이 적다"며 "심의를 할 때 관련 연구를 발표하면 이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계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기술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제경 서울대 수의대학 교수는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보다 현재 더 다양한 기술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기존 역할보다는 IRB 심의 이후 윤리적 문제가 있는지 등을 담당하는 식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도 나왔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부장은 "역할에 대한 고민을 자체적으로도 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연구계획서를 연구자만 믿고 허용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과학기술계의 의견과 규제 완화 건의를 생명윤리법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김근희 한경닷컴 기자 tkfcka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