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컨테이너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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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학창시절 부산항 부두에 큰 컨테이너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한 기억이 있다. 1974년 부산항에 처음 컨테이너선 부두가 건설됐는데 당시 한국 무역 규모는 100억달러를 갓 넘었다. 국내 무역 규모가 1조달러 이상인 지금 컨테이너가 빼곡히 쌓여 있는 부산항의 모습은 우리 무역의 성장사를 잘 보여준다.
컨테이너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미국에서 화물을 열차에서 트럭으로 옮겨 싣는 불편을 덜기 위해 철도로 도착한 화차 그대로 트레일러에 싣고 화주의 문 앞까지 운송해준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해상운송에서는 1926년 뉴욕 운수창고 회사인 보울링그린이 강철제 컨테이너를 유럽 항로에 사용한 것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 컨테이너는 2차 대전 중 미군의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해상운송에 사용됐다.지금은 단순해 보이지만 컨테이너의 사용은 국제물류와 무역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온 혁신이다. 국제적인 표준과 규격을 갖춘 컨테이너 덕분에 공장에서 트럭으로, 트럭에서 배로, 배에서 기차로 짐을 옮기는 일손을 덜고 선적 속도를 높여 빠르게 운송할 수 있게 됐다. 적정한 온도 유지가 필요한 제품의 보관과 수송이 쉬워지며 무역 대상이 확대됐다. 먼 길을 가야 하는 해상운송 시 파손의 위험성과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무역 위험성을 완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컨테이너 무역 확산은 세계 항구의 흥망으로까지 이어졌다. 영국의 런던과 리버풀항이 컨테이너 도입을 미루는 사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 컨테이너 터미널 단지를 건설하며 성장해 나갔다. 부산항도 컨테이너 화물로 성장한 대표적인 항구로 꼽힌다. 한국의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부산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 컨테이너항으로 발전했다.
언제부터인가 혁신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가 돼 버렸다. 기업, 산업, 정부까지 모두에 과감한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한 의미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일상에서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 혁신은 어느 누군가의 기발한 발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컨테이너의 등장처럼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 바로 혁신의 출발점이다.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과 아이디어에만 집착하다가 혁신의 단초를 놓치는 것은 없는지 걱정스럽다.
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