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 다급해진 메르켈, 좌파에 '곳간 인심'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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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4년간 재정흑자 300억유로독일 정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재정 흑자를 누리고 있다. 경제 호황으로 세수가 늘어나서다. 하지만 정부 곳간이 다시 빌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각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좌파 정당과의 연립정부 성사를 위해 복지 지출을 대폭 늘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민당과 연정 구성 현실화 땐
복지예산 과도하게 늘어날 수도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18~2021년 독일 정부의 재정 흑자 규모가 300억유로(약 3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독일은 2010년부터 재정 상황이 개선되면서 2014년부터 재정 흑자를 기록 중이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유럽 각국이 아직도 정부 지출을 어디에서 얼마나 줄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 차기 정부는 조세 제도를 손보고 재정 지출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FT는 보도했다.
옌스 보이센-호그레페 킬국제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이런 재정 흑자 상황은 전례가 없다”며 “우연이든 행운이든 차기 연립정부가 쓸 돈이 아주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내각 구성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 정부 지출이 얼마나 될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중도좌파 성향인 사회민주당과의 대연정이 현실적인 카드로 부상한 만큼 사민당의 복지 정책 등에 예산을 상당 부분 배정할 가능성이 높다.집권당인 기독민주·기독사회당연합과 사민당의 정책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기민·기사당연합은 150억유로 상당의 소득세 감면안을, 사민당은 저소득 및 중산층의 세금을 줄이는 대신 최고 소득자에게 더 높은 세율을 매기는 방안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 지출에서도 기민당은 아동수당 인상, 기사당은 어머니 연금 인상, 사민당은 주정부 연금 개정 등으로 엇갈린다.
이런 정책 차이가 정부 지출 증가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슈테판 슈나이더 도이치뱅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흑자 상태의 재정이 복지에 낭비되고 장기 성장에 중요한 교육, 인프라 같은 분야에 쓰이지 않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현 경제 상황에서 복지 지출 증가가 생산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클레멘스 퓌스트 Ifo경제연구소 소장은 “경제 호황기엔 부채를 줄여 다음에 올 침체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경제가 고용시장 훈풍과 저금리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고령화와 숙련된 노동력 부족 등 인구통계학적인 역풍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다. 친기업 성향인 자유민주당의 마르코 부슈만 의원은 “납세자의 돈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