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저널] '혁명의 해' 2017년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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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년·러시아혁명 100년이코노미스트 《2017 세계대전망》을 편집한 대니얼 프랭클린은 “2017년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 것”이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했다. “2017년은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일 뿐 아니라,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이 출간된 지 150주년, 그리고 쿠바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가 사망한 지 50주년이며,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내건 지 5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따라서 2017년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해가 되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고 썼다.
올해 한국도 급격한 변화 이어져
'촛불혁명' 평가는 후대에 받게될 것"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놀랍게도 ‘혁명의 기운이 감돈다’는 그의 직관은 그대로 적용됐다. 올해 한국에서는 이른바 ‘촛불혁명’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12간지로 본 올해는 닭의 해이기도 하다. 닭의 해를 떠올리는 이유는 계유년인 1453년에 있었던 계유정난(癸酉靖難) 때문이다. 수양대군이 세종대왕과 문종의 참모였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왕위찬탈을 한 것이 계유정난이다. 정난(靖難)은 ‘난리를 안정시켰다’는 뜻인데, 이는 김종서-황보인-안평대군의 쿠데타 시도를 수양대군이 역(逆)쿠데타로 수습했다는 ‘승자(勝者) 역사’의 시각을 반영한 산물이다.
역성(易姓)혁명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초기 이씨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세조(수양대군)를 큰 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사람들은 계유년 사건을 긍정적 의미의 ‘정난’으로 규정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수양의 왕위찬탈이나 단종 ‘사사(賜死)’를 강조하는 쪽은 수양대군의 ‘쿠데타’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는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수양대군처럼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쿠데타의 주역이었지만 개인소득이 북한보다 못한 굶주림에 허덕이던 남한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바꿔 놓은 산업화의 역사적 거인이다. 하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원죄에 묶여 ‘100주년 탄생기념’ 우표발행 취소는 물론 기념관, 생가, 동상까지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인본주의와 외세 배격’을 근간으로 한다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주민을 허기로 몰아넣은 허울 좋은 가면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작은 정부가 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며 다른 나라들이 다 내리는 법인세를 올리고 있다. 또 프랑스 마크롱 정부처럼 노조의 과도한 요구에 맞서 싸우는 추세와 반대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 제로화, 철밥통 공무원 증원 등 ‘큰 정부·친(親)노동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단장이 보초를 서면 그 군대에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를 ‘만기친람(萬機親覽) 정부’라고 욕하던 문재인 정부는 이제 장관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청와대와 검찰만 나서서 모든 설거지까지 도맡으며 ‘내로남불’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적폐’는 이제 계유정난에 쓰이는 ‘정난’ 만큼이나 역사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단어로 바뀌어 가고 있다. 누가 정말 적폐의 대상이고 누가 적폐를 단죄할 수 있는 주체인지도 모를 일들이 국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올해는 ‘외환위기 20주년’이기도 하다. 귀고리, 금반지를 빼 내놓으며 국난을 극복한 것이 엊그제 같다. 그런 나라지만 ‘국정농단’이라는 죄목으로 국회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유죄 판단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법정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주와 증거인멸 위험이 없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구속연장까지 시켜가며 영어의 신세로 남겨 놓은 채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게 올해다.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 그 평가는 후대의 것이다. 그 속에서 ‘혁명의 해’ 2017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