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공정무역 더는 못참아"… 미국·일본·EU, '레드카드' 꺼냈다

WTO 회의서 공동성명서 채택

당국 허가없이 데이터 반출 못해
기술이전 강요하고 국유기업 우대
온갖 규제로 외국기업 활동 제약

"중국 잘못된 교역 관행 막아야" 규탄
과잉생산에 따른 덤핑 차단도 공조
국제 통상관례를 무시한 중국의 ‘일방적’ 행보가 잇따르면서 미국과 유럽, 일본이 손을 잡고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외국 기업의 상업데이터 반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비판하고, 중국의 철강 과잉생산 등에 대한 대응에 협력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다. 중국 성토장이 된 WTO 각료회의가 중국의 교역 관행에 변화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이번 회의는 13일(현지시간) 폐막한다.◆중국 포위한 ‘新3국 동맹’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12일 WTO 각료회의에서 중국의 인터넷 규제와 보호주의적 산업정책을 시정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서에는 보조금과 국유기업, 기술 이전 강요, 현지부품 사용 요구 등 중국의 불공정 경쟁 상황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국을 대상으로 한다는 명시적 표현은 빠졌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보호주의적 조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중국을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말름스트룀 집행위원)는 강경 발언까지 쏟아져 나왔다.◆데이터 규제에 정면 반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중국 정부의 상업용 데이터 관련 규제 강화 움직임이다. 중국은 지난 6월 ‘인터넷 안전법’을 시행하며 외국 기업의 인터넷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를 중국 기준에 적합하게 하도록 규정했다. ‘인터넷이 사회 안정을 위협해선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에서 수집한 각종 상업 데이터를 해외 반출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인터넷 서버도 중국에 설치하도록 요구했다.

미국, 유럽 국가, 일본은 이 같은 규제가 중국 시장에서 일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며 공정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대형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각국에 산재된 공정을 본국에서 집중 관리하고 물류체인을 운영할 필요가 있는데 기초 데이터 활용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서비스 업체도 소비자 구매 정보를 바탕으로 한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인터넷 안전법 조문이 추상적이고 중국 정부가 임의로 적용할 여지가 많은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사소한 보안 문제 등을 꼬투리잡아 외국 기업의 행동을 제약하고 거액의 벌금을 부과한 중국 정부의 전력이 불신의 근거다.

중국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 기업의 운신 폭도 좁아지고 있다. 미국 애플은 10억달러(약 1조907억원)를 투자해 중국 구이저우성에 데이터센터를 개설하면서 지방정부와 협력하고, 지역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제휴한다고 약속했다.

◆중국산 덤핑도 막기로중국이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과잉 생산을 무기로 ‘저가 공세’를 펴는 데 대한 대응에도 미국·일본·유럽 간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공동 성명이 중국산 철강 등 과잉 생산이 매우 심각한 분야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잉 생산의 ‘원죄’를 짊어진 국가가 중국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는 것이다.

중국이 도입을 검토 중인 ‘수출 관리법’을 견제하는 행보도 본격화했다. 수출 관리법은 중국 정부가 지정한 특정 중국산 재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제품은 일본 등 다른 국가가 제3국으로 수출할 때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스마트폰이나 하이브리드모터 등 첨단 정보기술(IT) 제품의 핵심 소재에 사용되는 희토류가 그런 수출 허가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달 초 일본 최대 경제인단체인 게이단렌과 일본 무역위원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중국의 수출 관리법을 우려하는 의견서를 중국 상무부에 제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WTO 각료회의에서 중국의 잘못된 교역 관행을 막아야 한다는 데 미국과 일본, 유럽이 공감대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