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이규성 칼라일 CEO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 기업에 더 큰 자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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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사모펀드' 미국 칼라일그룹 이규성 공동CEO 내정자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세계 최고 인재가 몰려 있고 매년 투자수익률로 실력을 증명해야 살아남는다. 이런 곳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이규성 씨(52)가 지난 10월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그룹의 차기 공동최고경영자(Co-CEO)로 내정됐다. 그의 별명은 ‘문제 해결사’다. 문제가 있던 헤지펀드사업을 정리하고 크레딧(부실채권 투자)사업을 재건했다. 이 내정자가 주도한 사모펀드사업은 올해 27%나 성장했다. 지난해 작고한 이학종 연세대 경영대학장의 장남인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유년 시절 한국에서 3~4년을 보냈다. 어머니는 지금 한국에 산다. 그는 “한국은 내게 특별한 곳”이라고 했다.
만난 사람=김현석 뉴욕 특파원
검은 눈의 '문제 해결사'
입사 후 창업자 빌 콘웨이와 투자사업 혁신
헤지펀드 사업 접고, 부실 채권 사업 재건
12개월간 사모펀드 포트폴리오 27% 성장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
ADT캡스 인수 후 수익·현금흐름 모두 개선
북핵은 리스크 중 하나일 뿐…한국 투자 지속
가장 큰 위협은 낙관론…'비트코인 거품' 주의를
한국계 미국인들의 롤모델
성공하려면 배울 수 있는 멘토 찾아야
교수였던 아버지에게서 '리더의 자질' 물려받아
어머니는 한국에 거주…저에겐 특별한 곳
▷2013년 칼라일로 옮긴 지 4년 만에 공동최고경영자(Co-CEO)가 됩니다.
“칼라일에 온 건 4년 반 됐지만 그전 21년간 사모펀드업계에서 일해왔습니다. 투자에서 성공적 이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라일에 입사한 뒤 창업자 중 한 명인 빌 콘웨이를 도와 투자사업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이후 점점 관할 업무가 많아졌어요. 칼라일은 그동안 새 전략을 짜는 등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몇몇 투자를 끝내기로 하고 깨끗이 정리하기도 했죠. 그래서 짧은 기간이지만 칼라일이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해가야 할지 잘 알게 됐습니다. 이런 시점에 공동 창업자들은 회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요인이 겹쳐 제가 선택된 겁니다. 운 좋게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곳에 있었고, 창업자들이 차세대 리더에게 원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네요.”
▷칼라일에서 이룬 성과를 말씀해주십시오.“지난 1년 동안 칼라일그룹의 사모펀드 포트폴리오가 27% 성장했습니다. 100억달러 가까이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거의 120억달러를 돌려줬습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 칼라일이란 특별한 팀의 일원으로서 이룬 성과입니다. 우리는 또 ‘새로운 칼라일 글로벌 파트너’라 불리는 펀드를 설립했는데, 출발이 좋습니다. 과거 내부에 몇몇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지펀드사업을 접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죠. 대신 크레딧사업을 재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우수한 인재를 데려왔고 전략을 재설계했습니다.”
▷ADT캡스 매각 작업은 잘 이뤄지고 있습니까. 일부에선 칼라일이 너무 비싸게 샀다고 지적합니다.
“ADT캡스는 훌륭한 회사이고 뛰어난 CEO가 이끌고 있습니다. 투자는 매우 성공적입니다. 인수한 뒤 수익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 현금 흐름이 모두 증가하고 있어요. 출동서비스 파견 시간이 30% 이상 단축됐고, 고객은 25% 이상 늘었죠. 보안 사고도 16% 감소했습니다. 우리는 보안 설비에 많은 투자를 했고 기업뿐 아니라 가정 고객으로도 시장을 확장했습니다. 매각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회사는 아주 잘하고 있고요, 이렇게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면 우리는 투자자에게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겁니다.”▷2014년 ADT캡스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가 없습니다. 철수를 고려한다는 소문도 돕니다.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입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있었고 계속 그럴 겁니다. 칼라일은 전략적으로 아시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으며 한국은 중국 인도 일본 호주와 함께 중요한 다섯 개 시장 중 하나입니다. 한국은 선진국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많은 딜(deal)이 있지는 않습니다. 시장 규모가 작습니다. 하지만 딜이 없다고 떠난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우리는 매우 신중하게 딜에 접근하고, 올바른 투자라고 생각하면 사들일 겁니다.”
▷주시하는 산업이나 기업이 있습니까.“서너 종류의 딜을 유심히 봅니다. 먼저 카브아웃(carve-out:대기업이 매각하는 자회사나 사업을 사들여 성장시키는 것) 거래를 찾고 있습니다. 글로벌 보안 기업인 타이코가 매각한 ADT를 사들인 게 그런 사례입니다. 칼라일은 카브아웃 거래를 잘합니다. 회사를 독립시키고 투자해 성장시키지요. 그리고 파트너링 거래(기업 창업자와 파트너십을 통해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를 좋아합니다. 개인이 소유한 중견기업이 성장 한계에 부딪혀 회사를 우리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칼라일은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그런 기업을 키우는 데 뛰어납니다. 의류업체 몽클레어가 대표적이죠. 원래 브랜드는 좋았지만 한 지역에만 집중돼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켰습니다. 헤드폰업체 비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입한 뒤 중국 일본 시장 등으로 진출시켰습니다. 새로운 인터넷 기반 경제, 헬스케어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는지요.
“한국 경제는 상당히 성숙해 낮은 한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대기업들이 있고 그들이 혁신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됩니다. 인터넷 기반 경제도 앞서 있습니다. 인터넷에 바탕을 둔 새로운 소비자 경제 기반이 큽니다. 또 생명공학과 건강관리 등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투자는 없었지만 계속 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핵 사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북한이 위험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리스크인지는 모르겠네요. 현재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누군가 미친 짓을 저지를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북한은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투자할 때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투자자와 시장이 지나친 낙관론에 빠지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자만심이 생기면 기업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투자자들은 위험을 낮춰보고 비싼 값을 지급하게 됩니다. 그런 현상은 자산 거품을 형성시키지요. 사람들은 최근 폭등한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거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과거에 목격한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레버리지 투자는 찾을 수 없습니다. 아직은 낙관론이 과도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지정학적 위험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또 금융정책의 오류 가능성도 유심히 지켜봐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양적완화를 되돌리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책적 실수가 생긴다면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칼라일그룹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신임 CEO로서 새로운 비전과 목표가 있는지요.
“1년 전부터 (이번에 함께 공동 CEO를 맡게 된) 글렌 영킨과 함께 현재의 전략을 세워왔습니다.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1000억달러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또 크레딧사업을 재건하고 과거 잘못한 사업들을 정리했습니다. 당분간은 이 같은 전략을 계속 추진할 겁니다.”
▷지난 몇 년간 칼라일그룹은 많은 변화를 겪었고, 당신은 ‘문제 해결사’로 불렸습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까.
“외부에서 영입됐다는 게 다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칼라일그룹이 뛰어난 점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한다는 겁니다. 이런 문화가 칼라일을 더 나은 조직으로 만들지요. 저는 외부에서 경력을 쌓았고, 칼라일로 들어왔을 때 신선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칼라일은 또 뛰어난 인재로 구성된 강력한 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를 문제 해결사라고 부를 수 있지만, 실행하는 건 팀의 노력이지요.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좋은 답을 생각해낼 수 있었습니다.”
▷3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KKR, 블랙스톤에도 한국계 최고경영진이 있습니다. 왜 사모펀드업계에서 한국계가 약진한다고 보는지요. 다양성이 원인입니까.
“조셉 배(KKR 공동 사장 및 공동 최고운영책임자)와 마이클 채(블랙스톤 최고재무책임자)를 잘 압니다. 이들의 성공 요인이 오직 다양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모펀드업계는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면 버틸 수 없는 곳입니다. 조셉 배와 마이클 채는 매우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최고경영진이 됐다는 건 그들의 업적, 성취도,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겠지요. KKR과 블랙스톤이 그들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업계에서 일하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조언해주십시오.
“위대한 멘토와 함께 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울 수 있는 멘토를 찾으세요. 어떤 조직은 그런 뛰어난 사람들과 기업문화를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사모펀드사업은 매우 어렵고 경쟁적입니다. 멘토가 없다면 성공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멘토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워버그핀커스에 있을 때 존 보겔슈타인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보겔슈타인은 세계 최고 투자자 중 한 명이고, 워버그핀커스 공동창업자 중 한 명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빌 콘웨이, 댄 대니얼로 등 칼라일그룹에 그런 창업자들이 없었다면 옮기지 않았을 겁니다. 칼라일 공동창업자들은 놀라운 재능과 열정을 갖고 특별한 기업을 키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매일 그들에게서 뭔가를 배웁니다. 모든 훌륭한 리더는 약간의 교육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칼라일의 문화입니다. 아마 저도 교수이던 아버지에게서 이를 조금 물려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리더가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조직은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버드대를 나왔습니다. 학창 시절은 어땠습니까.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지만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그는 뉴욕 맨해튼 링컨센터 극장의 이사장이다). 하버드를 다닐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아서였죠. 아내와 아들도 하버드를 나왔고, 딸은 재학 중입니다. 하버드의 네트워크는 강력하고 사모펀드업계에도 동문이 많습니다. 저는 계속 하버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그는 하버드대 글로벌자문위원회와 캠페인운영위원회 위원이다).”
■ 이규성 공동CEO 내정자는…
1965년 미국 뉴욕주 알바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고(故) 이학종 연세대 경영대학장이다. 한국에선 네다섯 살 때, 중학교(서울외국인학교) 때 등 3~4년간 살았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모교인 초트로즈마리홀(고교)을 졸업하고 하버드대(경제학·응용수학 전공)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골드만삭스, 맥킨지&컴퍼니 등을 거쳐 1992년 투자은행 워버그핀커스에 들어가 사모투자펀드업계에서 21년간 일했다. 2013년 칼라일그룹 부(副)최고투자책임자(전무)로 옮겼다. 2014년 한국 ADT캡스를 2조1000억원에 인수할 때 막후에서 이를 주도했다.
부인과 아들도 하버드대를 나왔으며 딸은 재학 중인 하버드 가족이다. 대학 때 뮤지컬동아리 활동을 한 그는 뉴욕 링컨센터 극장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하버드대 글로벌자문위원회 및 대학캠페인운영위원회 위원이다.△1965년 미국 뉴욕주 알바니 출생 △1982년 초트로즈마리홀 졸업 △1986년 하버드대 졸업 △1990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0년 맥킨지&컴퍼니 입사 △1992년 워버그핀커스 입사 △1997년 워버그핀커스 파트너 △2013년 칼라일그룹 전무 △2017년 10월 칼라일그룹 공동최고경영자(Co-CEO) 내정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