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람 중심 경제'가 성공하려면

"먹고사는 문제 기업이 책임지는 자본주의 경제
기업활동 없이 성장할 수 없어

'사람 중심 경제'가 작동하려면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의 '성장본능' 살려야"

좌승희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를 경제 운영의 핵심이념으로 내걸고 있다. 이 개념이 사회주의이념 아니냐는 논쟁이 없지는 않지만 ‘사람’을 위한 경제를 강조하는 자체만으로 나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경제문제는 복잡현상으로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칫 사람을 위한다는 선의의 정책이 사람을 해치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보다 치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물질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공산주의 체제가 모두를 다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예가 그렇다. 그래서 ‘지옥에 이르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18세기 영국의 사회비평가 새뮤얼 존슨의 경구는 지난 20세기는 물론 금세기에도 예외 없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도 그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만일 사람과 기업을 적대적 구도 속에서 바라보는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선의가 지옥을 만들어낼 위험성이 커 보인다. 기업을 노동력 착취 수단이라고 보고 적대시하는 한 사람 중심 경제는 요원하기 때문이다.인류의 절대빈곤 탈출은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 경제로의 전환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럼 농경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순화하면, 농경사회는 모든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를 토지 생산성에 의존했던 시대다. 인구가 증가하면 1인당 소득이 하락하고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하면 소득이 다소 오르지만 절대적으로 제한된 토지생산성하에서는 생존수준의 절대빈곤선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인구증가 속도가 토지생산성의 증가 속도를 능가한다고 주장한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이름을 따서 이 빈곤의 함정을 ‘맬서스 함정’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럼 자본주의 경제는 무엇이 다른가. 단순화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를 농토가 아니라 기업이 책임지는 경제다. 서구의 농경사회 말기에서 산업혁명 초기에 걸쳐 등장하기 시작한 주식회사라는 사회적 기술인 기업은 영국에 의해 19세기 초 법적으로 공인됐는데 이것이 인류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발명품이 됐다. 자본주의적 유한책임주식회사인 기업은 논리상 자본 규모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나 가족기업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자원 동원과 위험부담 능력을 창출해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런 기업이 농토에 삶을 의지하던 대부분 인간을 대규모로 흡수해 서로 간의 복잡한 상호협력과 시너지 창출체제를 구축,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면서 중산층이라는 소득계층을 양산해 동반성장의 시대를 만들어 냈다.

농경사회도 자본주의 경제도 모두 시장경제 체제인데 근본적인 차이는 기업이라는 사회적 기술의 유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기업의 성장 없이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주식회사 기업이 빠진 경제는 바로 농경사회로 전락해 절대빈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기업을 국유화해 없애고 공산당이 공장을 관리하던 공산주의 국가가 망한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모두 농경사회와 다르지 않은 절대빈곤 국가로 전락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인 기업경제를 잘 활용한 중국을 제외하고 어느 전환경제가 성장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기업이 확산되고 성장하는 경제만이 일자리를 만들고 중산층을 키워 사람 중심 경제를 이룰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처럼 기업 성장이 위축된 경제는 저성장·양극화를 피할 길이 없다. 반면 ‘한강의 기적’은 중소기업을 대형 주식회사로 키워 일자리를 대량 공급함으로써 절대빈곤을 탈출, 유사 이래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을 실현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사람 중심의 경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 중심 경제는 결국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그 성장본능을 살려내야 가능해진다. 과감하게 대기업 규제정책을 철폐하고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성장하는 기업지원 정책’으로 전환, 자본주의 경제의 진수인 기업의 성장본능을 살려내야 진정으로 사람이 대접받는 경제가 실현될 것이다. 자칫 자본주의 기업경제의 본질을 제대로 못보고 소위 성장하는 기업 ‘청산’을 사람 중심 경제의 길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