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혁신위 "이건희 차명계좌에 과징금 부과해야"… 당혹스러운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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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권고안 금융위에 전달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차명계좌에 과징금과 소득세를 부과할 것을 20일 정부에 권고했다. 이 혁신위는 금융 적폐 청산 및 금융행정 개선을 위해 지난 8월 꾸려졌으며 이번이 첫 권고안이다. 혁신위는 금융분야 전반에 전문성을 갖춘 학계·업계·언론계 등의 민간인사 13명으로 구성됐다.
"실명제 이전 차명계좌는 과징금·소득세 부과 대상"
2008년 금융위 해석과 반대 "정권 따라 제도도 바뀌나"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2008년 삼성 특검으로 드러난 이 회장의 1993년 금융실명제 이전 개설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 및 소득세 부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중과세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과세당국과 적극 협력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발표했다.◆차명계좌 왜 논란인가
2008년 삼성 특검으로 밝혀진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1197개다. 이 계좌에 들어간 전체 규모는 4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논란이 되는 것은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 20개다.혁신위는 실명전환 의무 기간에 실소유주 명의로 실명전환을 하지 않은 것이 과징금 부과 사유라고 설명했다. 과징금뿐 아니라 이자·배당소득에 대해서도 중과세해야 한다고 혁신위는 덧붙였다. 금융실명법 제5조(비실명 자산소득에 대한 차등과세)는 실명이 아닌 비실명 재산은 계좌 개설일 이후 발생한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90%(지방세 포함 시 99%)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2008년 ‘차명계좌라도 실존 인물의 계좌라면 문제가 없다’며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했다. 이 문제를 지금이라도 다시 검토하라는 게 혁신위의 얘기다. 혁신위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 인출·해지·전환 과정 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과징금 부과 및 중과세를 할 경우 그 규모는 최소 1000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금융위 유권해석 바꾸나이 회장 차명계좌가 다시 논란이 된 것은 지난 10월부터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금융위를 대상으로 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회장이 삼성 특검에서 확인된 차명계좌와 관련해 세금과 과징금 등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날 혁신위 권고안이 나오자 “금융위가 혁신위의 권고에 따라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즉시 과징금을 부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위에선 이와 관련해 새로운 유권해석을 검토 중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중과세는 하되 과징금은 어렵다는 쪽이었지만 과징금 부과도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바꾸는 방안을 살피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위 방침을 설명할 예정이다.
삼성 측은 혁신위의 이 같은 결정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명계좌 건은 이 회장 개인적인 문제여서 회사에서는 알 수 없다는 게 삼성 측의 공식적인 반응이다.재계의 한 관계자는 “9년 전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삼성은 특검과 정부가 정한 대로 따른 걸로 알고 있다”며 “이제 와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유권해석이 바뀌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여론의 뭇매를 우려해 유권해석을 돌연 바꾸려고 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금융위는 당초 유권해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지켰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