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정부·이통사 입장 '제각각'…보편요금제 험로 예상

이해관계자 모두 다른 입장
합의 도달까지 오랜 시간 걸릴듯
보편요금제 논의를 위한 자리가 처음으로 마련됐지만 정부와 업계 간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정부와 이동통신 업계가 보편요금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협의회)는 제5차 회의를 열어 현 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보편요금제에 대해 논의했다.협의회는 가계통신비와 관련한 주요 정책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 결과를 국회에 전달하기 위해 꾸려졌다.

협의회가 보편요금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4차 회의까지는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해 논의했다.

보편요금제는 1위 이통 사업자인 SK텔레콤에게 2만원대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기가바이트)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출시하도록 한 제도다.정부는 SK텔레콤이 보편요금제를 출시하면 KT나 LG유플러스도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유사 요금제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약 2570만명이 연간 2조2000억원의 혜택을 볼 것이란게 정부의 예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8월23일 보편요금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 의결까지 완료되면 올해 연말께 국회 상임위원회에 제출된다.

다만 보편요금제를 두고 정부와 이통사, 시민단체 등 각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차가 크기 때문에 쉽게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특히 이통사들은 보편요금제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명확히 해왔다. 이들은 정부가 민간사업자에 통신요금을 강제하는 것이 시장 질서에 위배된다고 강조한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에 대한 투자 여력이 감소할 것이라고도 우려한다.

제5차 회의에서도 이통사는 "보편요금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며 "정부가 추진해왔던 '시장경쟁 활성화' 정책 기조에 역행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외국의 규제사례와 비교할 때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이통사의 경영악화를 초래해 5G, 연구개발(R&D) 등 투자위축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알뜰폰협회도 보편요금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상대적으로 이통사보다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알뜰폰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말이다.

알뜰폰 협회는 "보편요금제 도입 시 주력 요금제 시장의 상실로 알뜰폰의 어려움이 크게 가중될 수 있다"며 "보편요금제의 대안으로 알뜰폰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시민단체는 "보편요금제가 그간 이통사들이 소극적이었던 저가요금제에서의 경쟁을 강화한다"며 "기존 요금제의 요금을 순차적으로 인하하는 효과를 유발하는 등 오히려 경쟁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통사들의 경쟁이 고가요금제에만 치중돼 상대적으로 저가요금제에서의 혜택은 늘지 않고 있다"며 "소비자의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는 등 시장실패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이통사는 보편요금제 논의에 앞서 요금제를 인하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보편요금제 법제화를 반대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0일부터 월 11만원대 최고가 요금제 '데이터스페셜D'의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대신 그 아래 단계 요금제인 8만원대 '데이터스페셜C'의 혜택을 확대해 데이터스페셜D와 동일하게 매월 40GB에 매일 4GB의 추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이달 15일부터 12시간 단위 로밍 요금제를 출시했다. 기존 로밍 요금제는 24시간 단위로 설계돼 있어 여행 마지막 날 오후 12시에 출국하더라도 하루치 요금을 모두 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지막 날 12시간치 요금만 내면 된다.

차기 협의회 회의는 내년 1월12월에 열린다. 이 때 열리는 6차 회의에서도 보편요금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협의회의 5차 회의를 시작으로 통신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논의가 본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보편요금제가 시행되면 이통사들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돼, 합의에 이르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