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엇을 위한 개헌인지부터 분명히 하라

연말로 활동시한이 종료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연장 협상이 결국 불발했다. 개헌 시기를 둘러싼 여야 간 견해차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개헌 일정도 극히 불투명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지 않는다면 특위를 연장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일단 특위를 연장한 뒤 개헌안을 마련해 내년 말까지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맞서고 있다.

여야가 개헌 시기를 두고 다투는 것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든, 각자의 정치적 유·불리 때문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기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개헌이냐’는 것이다. 권력 구조 개편과 관련, 여야는 지난 1년간 특위 활동에서 입장 차이를 한 치도 좁히지 못했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줄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구체적 방안을 놓고선 공전만 거듭했다.권력구조 개편만이 개헌 논의의 전부는 아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최우선 목표로 급조돼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다.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국가 개입을 곳곳에 명시했다. 분배·복지 관련 조항은 개헌 때마다 크게 늘어났다.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유권자나 이익단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들을 집어넣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정부 규제를 강화하자고 한다. 헌법 119조 2항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를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며’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를 ‘해야 한다’라고 개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경제 원칙을 담은 119조 1항과의 모순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촛불정신까지 넣자는 목소리도 있다. 헌법은 통치 기본원리 및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이것저것 다 넣다보면 헌법적 가치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우려다.

개헌은 ‘87헌법’을 넘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의 자율·창의가 적극 발현되도록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기본이념이라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명분 삼아 입법부 권한을 늘린다면 국민이 용납 안 할 것이다. 이참에 국회의원들의 ‘입법과잉’행태도 손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