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유숙 대법관 후보의 '모르쇠'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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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모든 의혹이 소명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 청문회를 끝내고 국회 본회의 표결만 남겨둔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의 ‘잠수 모드’를 두고 현직 부장판사가 건넨 말이다. 민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는 7일째 본회의에 계류돼 있다. 본회의가 미뤄졌지만 결국 임명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우세한 듯하다. 이런 기류를 읽어서인지 민 후보자는 청문회에서의 듬성듬성한 답변 이후 제기된 여러 의혹에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본지가 보도한 ‘보석 청탁’ 추가 의혹 제기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새로운 증언과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지만 사실 확인을 거부하는 모양새다. 함구는 해결책이 안 된다. 남편과 친분이 있는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민 후보자가 교통사고 사망사건 피의자를 보석으로 풀어줬다는 의구심만 확산시킬 뿐이다.청문회 때 민 후보자는 “기억에 없다”고 했고, 법원은 ‘해당 기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확인 결과 관련 기록이 나왔다. 법원도 그 기록을 인정했다. 국회에서도 민 후보자가 허위진술을 했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재차 높아졌다.
보석 청탁 외에도 많은 흠결이 제기됐다. 민 후보자는 배우자와 함께 1989년부터 지금까지 자동차세와 과태료 등을 상습체납했다. 25차례나 차량이 압류될 정도다. 민 후보자는 ‘배우자가 운행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렇더라도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압류 횟수다.
부동산 거래 기록도 실망스럽다. 판사 재직 시절인 1989년 3월부터 6채의 오피스텔을 매매했다. 투자는 개인의 자유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재판에 신경 쓰느라 25건의 차량 압류도 몰랐다던 분이 어떻게 부동산에는 그렇게 관심을 갖고 투자했는지 모르겠다는 냉소가 만만찮다.입을 닫는다고 의심의 문이 닫히지는 않는다. ‘대법관이 되겠다는 분이 왜 저러느냐’는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본회의 표결까지 아직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의혹을 털어내고 신뢰받는 대법관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혹여 밀어붙일 요량이라면 금물이다. 민 후보자를 한숨과 함께 지켜보는 많은 시선이 있다. 그들의 요구를 짐짓 외면하고, 법과 정의를 논하겠다는 것은 과욕에 불과하다.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