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원화 가치, 1050원선까지 위협… 기업들 "엔저가 더 걱정"
입력
수정
지면A10
올해 경영환경 '시계제로'무술년(戊戌年) 첫 외환시장 거래일인 2일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60원대 초반까지 주저앉자 외환딜러들 사이에선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12월28일)에 1070원50전으로 가까스로 1070원대에 턱걸이한 원·달러 환율은 이날 개장과 동시에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해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소식과 북한의 지정학적 위험 완화 조짐까지 맞물려 환율 하락 폭이 커졌다.
1달러=1061.2원…3년2개월 만에 최저
브레이크 없는 원화 강세
지난해 달러 대비 12.8% 절상
수출 호조에 북한 리스크 완화 조짐
올 상반기까지 강세 이어질 듯
수출 기업들 '환율 쇼크' 초비상
엔저까지 겹쳐 가격경쟁력 약화
자동차·조선·철강 등 수출 타격 불가피
기업들 "올 사업계획 다시 짤 판"
거침없는 원화 강세에 기업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 등 각종 비용 증가 요인이 수두룩한 가운데 원고(高)까지 가세하면 경영 실적이 급속히 나빠질 수 있어서다. 특히 엔화 등 주요 경쟁국 통화에 비해서도 절상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수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지난 1년간 원화 절상률 13%에 달해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절상률은 12.8%에 달한다. 2004년(15.2%) 이후 13년 만에 최고다. 달러화뿐만이 아니다. 원화는 지난해 위안화에 대해선 6.1% 절상됐고, 엔화 대비로는 9.1% 절상됐다.
원·엔 환율 하락세는 유난히 가파르다. 이날 원·엔 환율은 7원42전 내린 100엔당 941원82전으로 마감했다. 2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한국을 비롯해 선진 각국이 ‘긴축’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만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는 데 따른 엔저(低) 영향이 크다.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 철강 기계 가전 업종 등에 악재다. 수출 기업들이 최근 원·달러 환율보다 원·엔 환율 하락 속도를 우려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당분간 하락세 꺾기 어려워”
전문가들은 상반기까지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로 돌아서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弱)달러 선호에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 개선에 힘입은 유로 강세 흐름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도 시장의 예상보다 느린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달러화 강세 요인이 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외 여러 요인을 종합해볼 때 원화 약세 요인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주요 증권사와 외국계 투자은행(IB)은 국내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개선 등을 감안할 때 원화 강세는 당분간 이어져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1050원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정부의 시장 개입이 변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급격한 변동에 대해선 정부가 대처해야겠지만 일단 전체적으로는 시장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시장개입 의지가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기업들 “경영환경 시계제로”
수출 기업들은 연일 노심초사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배터리 관련 기업들이 특히 그렇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원·엔 환율까지 급락세를 보이면서 국내 수출기업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여전히 일본의 주력 품목이 전반적으로 상품성이나 기술력에서 앞서는데 엔저로 가격 경쟁력까지 더해지면 국내 기업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 떨어지면 석유화학 수출은 13.8% 타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11.4%), 기계(-7.9%), 자동차(-7.6%), 가전(-6.9%), 정보기술(-6.9%) 등 다른 주력 제품 수출도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더라도 원화가 엔화에 대해선 상대적 강세를 지속할 수 있어 일본과 수출 경쟁을 벌이는 업종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며 “중국 기업 등과 기술적 차별화가 미미한 기업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