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청년가게 줄폐업… 정부 지침 맞추느라 '붕어빵'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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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전통시장-대학 협력사업'“학생들과 만든 메뉴를 파는 곳은 이제 한 군데도 없어요.”
지난해 17개 대학 113개 사업 살펴보니…
현실과 괴리… 전통시장 앱 고작 50명 내려받아
상인들도 "애는 쓰지만 보여주기식 그쳐" 불만
실패로 끝난 '청년셰프몰' 옆에선 또 '청년몰'사업
경기 수원시 권선종합시장에서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A씨(53)는 2016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지원으로 아주대와 시장상인회가 공동 추진한 ‘신메뉴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내리막을 걷던 매출이 상승 반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는 불과 1년도 안돼 새 메뉴 판매를 접었다. 학생들이 족발강정이나 족발육전과 같은 새 요리법을 개발했지만 원가가 비싸 고정 메뉴화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인 가구를 위한 소량 포장 용기 등 아이디어도 신선했지만 수요 부족에 시달리다가 역시 포기하고 말았다.반짝인기 후 폐업… 양산되는 ‘속 빈 강정’
‘전통시장-대학 협력사업’은 중기부가 예산을 지원해 대학과 상인회가 공동으로 상권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2015년 시작돼 매년 총 30억원의 예산이 편성되고 있다. 참여 대학이 지난해까지 40곳에 달한다. 작년 한 해만 17개 대학에서 113개 사업이 진행됐다. 사업 내역에 따라 지원금에 차이가 있지만 평균 2600만원꼴이다.
정부는 대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전통시장을 함께 지원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자랑하고 있다. 언론에 소개된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본지가 인현·대림·통인·면목·권선시장 등 수도권 일대를 중심으로 지난해 진행된 사업을 탐문하고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상당수 매장이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기부와 대학들이 모범사례로 손꼽는 것도 잘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인 경우가 허다했다. 동국대와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상인회가 개발해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시장 캐릭터 인형 ‘엽쩌니’도 지난해 5월 5000개가 제작됐지만 절반 이상이 재고로 쌓여 있다.이화여대와 응암동 대림시장이 시작한 ‘청년셰프몰’ 사업도 시장 내 빈 공간에 실력 있는 청년 셰프를 유치하면서 큰 관심을 끌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같은 시장 한쪽에선 비슷한 내용의 ‘청년몰’ 사업이 한창이다. 예산집행 기관도 중기부로 같다. 사업 주체만 대학이 아니라 은평구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따로 노는 대학·상인·정부
시장마다 차별화하지 않고 대동소이한 아이템을 내놓는 점도 주요 실패 요인으로 거론된다. 충무로 인현시장 상인 김모씨(75)는 “신발장사를 하는데 학생들은 대부분 먹거리에 집중하다 보니 도움을 못 받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시장특화상품 개발 △문화공간 조성 △정보통신기술(ICT) 접목 △시장 이미지 개선 △시장 홍보 △교육 컨설팅 등 6개 지원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들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쉬운 일회성 홍보에 치우치다보니 효과가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상인들의 요구와 동떨어진 ICT 사업이 일률적으로 추진되는 점은 딜레마다. 지난해 동작구 남성시장 활성화를 위해 학생들이 만든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시장 소개 앱(응용프로그램)은 다운로드 수가 채 50건도 되지 않았다. 한 상인은 “전통시장엔 앱이나 스마트폰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실용성이 떨어진다”며 “젊은 친구들이 애쓰는 것은 고맙지만 ‘보여주기식’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ICT 사업의 실용성이 낮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대학들은 매년 성과 평가를 통해 지원 여부가 결정되다보니 눈에 잘 띄는 전시성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올해 사업에 참여한 한 대학 관계자는 “시장별 특성에 맞춘 방안을 고민하기보다 성과가 보이는 천편일률적 사업에만 치중하는 인상”이라며 “자신의 주문을 따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담당 공무원과 험한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털어놨다.
전반적으로 예산 집행과정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 사업단장은 “한 시장에서 같은 사업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황정환/배태웅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