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퇴직연금 의무화의 딜레마

강경민 금융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영세사업장근로자가 직장을 잃어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퇴직연금 환경 변화와 연금세제 개편 방안’ 연구보고서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퇴직연금제도는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를 금융회사에 맡기는 제도다. 회사가 파산해도 근로자는 금융회사에서 퇴직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퇴직연금이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임에도 보험연구원이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가 뭘까. 정부는 이르면 2019년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30명 이하 영세사업장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정해진 기간 내 퇴직연금 미가입 사업장에는 과태료도 부과할 계획이다.

퇴직연금은 사내가 아니라 외부 금융회사에 퇴직급여를 적립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외에 적립된 퇴직연금은 사업주가 경영자금으로 활용할 수 없다. 과거엔 자금난이 발생하면 퇴직급여를 경영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이런 방식의 운용은 불가능해진다.

퇴직연금을 사외에 적립하는 데 따라 경영자금이 부족해지면 영세기업은 대출로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기업에 비해 영세기업은 대출금리가 높아 부담이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파산 기업의 99.3%가 10명 미만 영세 사업장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는 영세 사업주의 부담을 초래해 사업장 도산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보험연구원의 분석이다.퇴직연금은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그렇다면 정부가 의무 도입을 강요하고 과태료를 매기기보다는 퇴직연금을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영세 사업주에게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민해볼 때다. 퇴직연금 도입에 따라 경영자금이 필요한 영세 사업자에겐 대출금리를 일부 지원해주는 것도 또 다른 방안이다.

강경민 금융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