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수를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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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윤경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freedebt553@gmail.com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여러 곳에서 축사나 공개 발언을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그 말을 어김없이 하게 되는 바보 같은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M 웨그너는 이런 행동을 ‘아이러니컬한 실수’라고 정의했다. 머릿속으로 막으려 했던 바로 그 행동을 실제로 하고야 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과도한 부담감 속에 여러 일을 동시에 수행하려 할 때 그토록 억제하려고 했던 것들이 그 사람의 행동 지침으로 돌변한다. 육상 선수의 부정 출발이 ‘아이러니컬한 실수’의 대표적인 예다. 사실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우리 인생에서는 더 크고 치명적인 실수들을 수없이 하게 된다.우리는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지만,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한다. 크리스티네 폰 바이츠제커라는 여성 생물학자는 이런 인간에게 조언한다. ‘실수 친화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적자생존 법칙에 따라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자연에서 실수 친화적인 태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자연엔 언제나 우성 인자와 열성 인자가 공존한다. 열성 인자는 평소엔 실수로 취급받지만, 환경의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면 살아남는 것은 바로 그 열성 인자다. 따라서 자연의 진화는 강하거나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연은 다양성을 추구한다. 오직 다양성만이 미래를 향한 개방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이야말로 실수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존재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실수 친화적인가? 아마 대다수 사람이 ‘아니다’고 답할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해왔던 채무자 구제 운동과 지금 하고 있는 정치의 근본 목적은 모두 실수 혹은 불운으로 잠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삶의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실수에 대해 쉽게 낙인을 찍고 실패에 지나치게 가혹하다.실수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은폐하는 것이다. 이는 실수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을 사장시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든다. 여러 실수가 모여 전체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오는 재앙으로 변하게 한다.
실수는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소중한 기회다. 실수는 장애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실수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실수 친화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실수가 허용되는 곳에서만 우리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제윤경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freedebt553@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