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대신 수감번호… 박찬주 전 대장 민간법원서 첫 재판

뇌물수수 등 혐의 부인·보석 신청…"영창서 굴욕감 느껴"

'공관병 갑질 논란'을 일으킨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민간법원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군사법원에서 이뤄진 박 전 대장의 뇌물수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 재판을 대법원이 최근 민간법원으로 이송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10일 수원지법 형사11부(송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공판준비기일에 박 전 대장은 사복 차림으로 나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박 전 대장은 2014년 무렵 고철업자 A씨에게 군 관련 사업의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그로부터 항공료, 호텔비, 식사비 등 760여만원 상당의 향응·접대를 받은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기소됐다.또 A씨에게 2억2천만원을 빌려주고 7개월 동안 통상 이자율을 훌쩍 넘어서는 5천만원을 이자로 받기로 약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그는 제2작전사령관 재직 시절(2016년 9월∼지난해 8월) B 중령으로부터 모 대대 부대장으로 보직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B 중령이 보직 심의에서 다른 대대로 정해지자 이를 변경해 그가 원하던 곳으로 발령받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대장은 이날 "가까운 사이인 A씨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갚기로 한 날 갚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대신 조금 더 얹어서 갚겠다고 한 것이 전부이고 당시는 A씨가 군 관련 고철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그는 A씨로부터 향응·접대를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다녀와도 마지막엔 항상 정산하는 사이였다"며 부인했고 보직 청탁을 들어준 부분에 대해서는 "(부하에게)고충을 살펴보라고 한 것이 전부"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에 더해 박 전 대장 변호인은 군 검찰의 공소 제기(기소) 자체가 위법이라며 재판부가 공소 기각을 해달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군 인사법에 의하면 피고인은 보직에서 물러난 순간 전역을 한 것"이라며 "피고인에 대한 기소는 그 이후 이뤄졌는데 군 검찰은 피고인이 민간인이 된 이상 재판권이 민간법원으로 넘어갈 것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위법한 기소를 강행했다"고 강조했다.군 인사법은 장성급 장교를 법이나 대통령령이 정한 직위에 보임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동 전역 된다고 규정한다.

군은 그러나 지난해 8월 1일 전역신청을 한 박 전 대장을 같은 달 9일 당시 보직인 제2작전사령관에서 물러나게 하면서도 '육군인사사령부 정책연수'라는 법령에 없는 임의 직위에 앉혔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박 전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에서 물러난 날 전역한 것으로 봐야 하며 민간인이 된 그에 대한 재판권은 민간법원에 있다"며 지난달 재판권을 박 전 대장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수원지법으로 이송했다.
이 사건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당시 외형상 군인 신분을 보유했기 때문에 군 검찰로서는 사건이 명백하게 민간법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돼 일단 재판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변호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장은 이날 죄수복이 아닌 회색 셔츠에 카디건, 정장 차림으로 출석했다.

도주의 우려가 없는 피고인은 사복을 착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대신 왼쪽 가슴에 수용자 신분임을 알리는 수용자 번호가 적힌 배지를 달았다.

앞서 법원에 보석을 청구한 그는 "군이 비리 의혹을 받는 현역 대장을 포승줄로 묶는 상징성을 활용하고자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정책연수라는 직위를 줘서 전역을 막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로 인해 헌병대대 지하영창에 수감된 몇 달간 적군 포로로 잡힌 것 같은 혼란스러움과 극심한 굴욕감을 느꼈다"며 보석 허락을 요청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장과 보석에 반대하는 검찰 의견을 토대로 조만간 보석 허가 또는 불허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오는 26일 열리며 증인신문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박 전 대장은 앞선 지난해 7월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텃밭 관리를 시켰다는 등의 갖가지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곧 군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군 검찰은 그러나 박 전 대장이 병사를 사적으로 이용한 측면은 있지만, 직권남용죄에 이르지는 않는다며 갑질 혐의는 무혐의 처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