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폐쇄" 청와대는 "미정"… 가상화폐 대책 하루종일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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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발 가상화폐 '대혼란'가상화폐거래소 폐지 방안을 두고 법무부와 청와대의 엇박자가 심상치 않다. 법무부 장관이 직접 거래소 폐지 방안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가 청와대가 바로 부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정부 리스크’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가상화폐를 경제가 아니라 정치로 접근한 데서 시작된 혼선이라는 것이다.
비트코인, 하루새 600만~700만원 급등락
"가상화폐 문제, 경제 아닌 정치로 풀면 안돼"
◆법무부 “화폐 아닌 가상증표”법무부의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은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표현한 ‘가상증표’로 요약된다. 박 장관은 “가상화폐는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둔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가상화폐가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산업 자본화해야 할 자금이 가상화폐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투기성이 강해 한국 경제에 오히려 해악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가상화폐 대책을 검토할 때부터 법무부는 국내 거래를 전면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나온 대책들은 ‘거래 양성화’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성년자 거래 금지, 거래실명제 도입, 각종 불법거래 단속 등의 대책이 투자자를 오히려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는 해당 정책들이 투기 심리를 부추겼다고 우려했다.박 장관은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가 극히 위험한 거래라고 계속 경고했지만 이상하게 이런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했다는 식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이날 전면 거래 중지를 위한 거래소 폐쇄 방안을 발표한 배경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법무부와 다른 입장을 내놨다. 박 장관의 발언이 공개된 낮 12시 직후 국내 비트코인 시세가 전날보다 최대 30% 이상 폭락하는 등 해당 시장이 요동친 지 다섯 시간 뒤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단에 보냈다. 청와대와 법무부 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엇박자’를 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가상화폐 열풍에 엄정 대처하라는 지시를 법무부가 잘못 이해하고 ‘일방통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 접근에 길 잃은 정책법무부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터진 ‘바다이야기’까지 거론하며 관련 부처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국을 휩쓴 바다이야기 사행성과 중독성으로 피해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 법무부의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법안 초안에서는 가상화폐 투기 열풍을 그대로 두면 바다이야기의 열 배가 넘는 국가적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추정했다. 법무부의 강한 주장과 커지는 ‘사행성 투기’ 논란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 방침에 법무부는 즉각 박 장관의 발언을 바로잡았다. 법무부는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은 추후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번복했다. 정부의 거래소 폐쇄 방안이 미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비트에서 개당 1400만원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2000만원대까지 반등하기도 했다.
부처 조율 끝에 정부의 거래소 폐지안이 확정돼도 실제 폐지까지는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법무부는 내부 검토 결과 거래소 폐지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기존 투자자의 재산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거래소 폐쇄 자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법무부의 주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마약이나 음란물을 유통하는 업체를 폐쇄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거래소 폐쇄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향후 국회 논의가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보기술(IT)업계 한 전문가는 “국제금융시장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만큼 국내 정치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완/이현일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