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 '경영과 기술'] 암호화폐는 '화폐 이상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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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암호화폐의 기능e비즈니스 혁명은 새로운 상품의 구매가 아니라 구매 방법의 혁신에 있다. 똑같은 상품도 거래 시간과 직간접 비용, 즉 총 거래비용이 낮은 쪽이 선택된다. 화폐 거래에서도 총 거래비용이 낮은 쪽이 승리한다. 가상(암호)화폐도 이런 원리 아래에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화폐 이상의 화폐’라고 불린다. 스마트폰을 ‘폰 이상의 폰’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암호화폐도 화폐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다. △거래의 새로운 정산 및 청산 수단 △금융투자 자산으로서의 가능성 △새로운 디지털 사업 가능성과 투자 유치 수단으로서의 가능성 등이다.우선, 거래 청산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 실험되고 있지만 암호화폐는 다른 유가증권이나 증명서로 활용할 수 있다. 채권이나 증권은 블록체인화하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증권을 암호화폐처럼 블록체인에서 거래하면 우리는 증권거래소나 증권예탁원 같은 기관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각종 증명서는 위조 위험 없이 빛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 경우 사기와 위조 등 사회적 불신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금융투자 자산으로서 가능성 충분
논란이 되는 것은 금융자산으로서의 기능이다. 돈에 가격과 고유 가치를 매기고 투자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 암호화폐는 왜 투자 대상이 되는가. 하나는 외환처럼 환율 변동 가능성에 대한 투자다. 공식화폐는 정부 관리 아래 그 나라 경제력에 따라 가치가 변동한다. 즉 기본 자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투자하는 금융상품은 모두 이 기본 자산의 가치 변동성에 대한 투자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기본 자산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이 사기 또는 버블 논쟁의 핵심이다. 그러나 암호화폐에 기본 자산이 없어도 가격이 매겨질 이유는 존재한다. 공식화폐는 세금으로 조폐공사가 발행한다. 비트코인은 채굴자들의 기여와 블록체인에 의해 발행된다. 공식화폐처럼 이 암호화폐도 발행 비용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지불결제 시스템에 서비스 비용을 지불한다. 신용카드도 연회비와 가맹점의 수수료가 있다. 비트코인이 다른 지불수단에 비해 이런 거래의 총 기회비용이 저렴하고 더 다양한 기능이 존재한다면 소비자들은 비트코인 발행 및 거래 비용을 낼 것이다.다음 기능은 지금의 암호화폐는 새로운 사업계획을 안정되게 수행하는 수단, 즉 사업 제안이라는 가치다. 현재 암호화폐는 1만1380여 개, 거래소는 7500개가량 존재한다. 시장 가격으로는 약 800조원이다. 왜 이렇게 많은 암호화폐가 출시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화폐들은 비트코인과 같은 코인이 아니다. 비트코인의 기술적 한계나 관리체제 개혁을 내걸고 출시되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하면서 초기 코인 판매를 통해 투자금을 모으고 거래를 시작한다. 한 예로, 최근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가상애완고양이’를 판매하는 사업이 등장했다. 크립토키티(Cryptokittes)라는 서비스인데 이더리움의 암호화 기술로 개별 가상애완고양이를 암호화하고 고유번호를 부여해 누구도 복제나 도용할 수 없게 보장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가상고양이는 우리돈으로 1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것이 속출하고 출시 2일 만에 매출이 120억원을 넘는 등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암호화폐는 화폐이자 디지털 상품을 안전하게 거래하는 사업 가치를 담고 있다. 이를 믿고 암호화폐 출시를 기해서 초기 자금을 모으는 소위 ICO(Initial Coin Offering·암호화폐공개)가 새로운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버블의 힘으로 전진"이런 혁신 가치들 때문에 암호화폐가 주목받고 투자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튤립 버블’의 튤립 뿌리조차 없는 사기라는 주장은 이 혁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암호화폐의 버블과 실험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금융 고객은 약 50억 명이고 암호화폐 지갑 수는 이제 2200만 개 정도로 0.4%만이 이 흐름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초기에 버블이 꺼지는 경우는 드물다. 기성세대는 네티즌의 디지털 기술에 대한 충성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미국 달러는 사고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 화폐에는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그 화폐를 계속 사주고 사용할 사람이 존재하느냐 하는 믿음의 차이밖에 없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는 정부나 금융감독기관보다 블록체인의 안전성을 더 신뢰하고 그런 동료들이 전 세계에 수없이 많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버블을 만들고 버블의 힘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현상을 “소수의 원대한 꿈을 꾸는 천재들과 수많은 바보가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 했다. 암호화폐 현상 또한 다르지 않다. 서양 속담처럼 ‘목욕물에 아기까지 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공포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