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 "가족과 격리된 연명의료… 환자 삶 돌아볼 시간 빼앗아"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사망자는 28만 명. 이 중 약 75%(약 21만 명)는 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 집에서 임종을 맞은 사람은 15.3%에 불과했다. 병원이 사람을 살려내는 곳이자 죽음을 맞는 장소가 돼버린 것. 그러나 정작 ‘병원에서 임종을 맞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6.3%뿐이었다.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기 전 차분하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갖고 가족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지만 실상은 가족들과 격리된 중환자실에 누워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혈액종양내과 교수(사진)는 신간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글항아리)에서 30년간 의료 생애에서 경험한 ‘임종 현장’을 보여주며 ‘기계적 연명의료 행위’를 어디까지 행해야 하는지 묻는다.
허 교수는 18일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지양하는 문화가 필요한 때”라며 “새로운 죽음 문화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통과돼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 때문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란 환자가 소생불능 상황이 왔을 때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4가지 의학적 시술을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 시행하던 시술을 그만두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무 자르듯 손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허 교수는 “말기 환자에게 죽음을 직접 알리는 것을 꺼리는 문화 탓에 연명의료 결정을 가족들이 한다”며 “가족들이 연명의료를 중단하지 않길 원하는 경우가 제일 많고, 가족 간에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두고 대립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허 교수는 그러나 “일본이나 유럽처럼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복잡한 쟁점거리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환자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딸, 친구로서 주변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정리하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계에 의존해 수명을 연장하느라 가족들조차 격리되는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누워있을 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달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법 역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허 교수는 “대부분 나라가 심폐소생술금지동의서(DNR) 같은 간단한 서식으로 처리하는 데 반해 한국은 복잡한 서식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며 “서류를 갖추다가 사망하거나 연명의료 시술이 들어가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