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도시에 던져진 조선인 디아스포라… 조덕현 개인전 '애픽 상하이' 19일 개막

연필과 콩테로 은은한 무채색 그림을 주로 그려온 조덕현 작가(60·이화여대 미술학부 교수)의 개인전 ‘에픽 상하이’가 19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에픽’(epic·서사시를 뜻하는 영어단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서사가 이번 전시회의 주제다. 조 작가는 상하이 출신 여류 소설가 미엔미엔과 함께 가상의 인물 ‘조덕현’과 ‘홍’이 등장하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스토리 속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로 조선 출신 조덕현은 상하이로 흘러들어와 밑바닥 일을 하며 살다가 이곳 토박이 소설가 홍을 만난다. 옛것과 새로운 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뒤엉켜 소용돌이치는 거대 도시 상하이는 이들의 만남과 닮은 구석이 있다. 조덕현은 아웃사이더이고 홍은 인사이더로서 둘은 극도로 상반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둘은 만남과 편지 교환을 하며 서로에 대해, 상하이에 대해 점차 알아간다.전시 작품 수는 모두 9점이다. 이 가운데 ‘꿈꿈’, ‘1935’, ‘상하이 삼면화’ 등 3점은 크기가 500호를 넘는 대작이다. 이 3점은 모두 종이에 연필로 그린 그림이며 일부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 동서양의 문물이 서로 만나 묘한 이질감을 풍기는 상하이의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는 조덕현 또는 홍인 것으로 보이는 인물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꿈꿈(사진)이다. 콘크리트와 철근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에서 사람들이 아비규환으로 뒤엉켜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건물 잔해에 깔려 있고 어떤 사람은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런 아비규환의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천상에서 온 것 같은 화려한 깃털의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건물과 사람들은 연필로 그렸는데 새는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 더 두드러져 보인다. 조 작가는 “스토리 속 조덕현이 상하이에 있는 자기 스스로를 난민이자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며 “새는 조덕현에게 위로를 주는 어떤 것으로서 홍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