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진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선전이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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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중국, 질주하는 선전최근 1년 사이 중국을 네 번 다녀왔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주로 대도시 위주였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본 중국의 발전상은 놀라웠다. 선전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임에도 변화의 속도를 느낄 수 있었다. 첨단 정보기술(IT) 기반의 창업 생태계로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며 급성장하고 있는 선전의 젊고 활기찬 모습은 한국에서 창업하고 기업을 이끌어온 경영자에게 놀라움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QR코드로 장을 보고, 현금이나 신용카드 없이도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으로 결제까지 마무리하는 신개념 마트 허마셴성과 통신을 넘어 스마트시티와 원격의료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화웨이를 둘러보며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의 모습에 답답함과 조급함이 동시에 밀려왔다.기업가가 자기검열하는 한국문득 씁쓸함을 느낀 대목은 따로 있다. 모바일 결제, 원격 진료 등 다양한 기술과 사업이 접목된 여러 사례를 보면서 무의식중에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안 될 거야’ ‘기존 산업의 반발로 힘들겠지’라는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중국 창업자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왜 그런 걸 고민하냐”며 오히려 의아해했다.
(2) '혁신의 숨은 공신' 선전시
위챗페이 같은 간편결제
모바이크·오포 등 공유자전거
선전에선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
국내선 사업 초기 시간의 절반 이상
규제 대응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누가 한국에서 창업하려 할까
선전=김봉진 < 우아한형제들 대표 >
국내 스타트업 종사자는 창업하려면 사업 초기 자원의 절반 이상을 규제 대응에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철저히 고객 중심으로 접근하고, 시장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선전의 창업 환경과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창업하기도 어렵지만 이후 기업을 성장시켜나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와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는 규제 문제를 푸는 데 골몰하다가 기업가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위챗페이와 같은 간편 결제와 메이퇀·어러머 등 배달앱 이륜차, 모바이크·오포 등 공유 자전거는 선전 시민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다. 정부 정책과 지원으로 모든 대중교통 버스는 전기차로 전환됐고, 음식 배달도 대부분 전기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다.사실 배달의민족의 프리미엄 외식배달 서비스 ‘배민라이더스’도 지난해 전기자전거 도입을 적극 추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로교통안전 관련 법규나 보험 적용의 어려움 등으로 현재 국내 실정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고 잠정적으로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중국에 진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부 정책,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관료…. 선전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혁신 경제의 인프라와 창업 장려 문화를 조성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 창업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국내에서 논란이 된 카풀 앱이나 개인 간(P2P) 대출을 둘러싼 상황만 봐도 그렇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질서와 충돌하며 이해상충과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부가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규제하고 나서면 어떻게 혁신이 가능할까. 혁신적 아이디어와 불굴의 의지로 도전해야 할 창업가, 기업가들이 자기검열을 하면서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부정하게 만드는 풍토 위에서 “왜 한국에선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이 나오지 않을까”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실력 있는 인재들이 한국에서 창업하려 할까, 아니면 실리콘밸리나 선전으로 향할까. 애써 부인하고 싶어도 답은 자명하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선전이 너무 부럽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진 것 같아 자존심마저 상했다.
선전=김봉진 < 우아한형제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