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전라도 이 음식들 여기서 먹어야 제맛

국내 여행

장흥 매생이국에 석화구이… 한우·키조개·표고 '삼합'
강진 '산해진미 한정식'은 유배 온 양반들의 궁중음식
벌교 꼬막
여수 새조개
나주 홍어-곰탕에 봄이 '성큼'
강진 한정식
겨울에 떠나는 여행은 고적하다. 풍경이 눈에 덮이거나 쓸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 계절에 떠나도 미식여행은 행복하다. 특히 미식의 본고장인 전라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겨울에 즐길 만한 전라도의 대표 먹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사철 삼합 겨울엔 석화까지 장흥의 맛전남 장흥은 산과 들 바다가 주는 맛깔스런 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겨울제철 음식으로 매생이, 감태, 석화구이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전국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매생이는 겨울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고 일출 포인트인 남포마을의 석화구이는 가치에 비해 덜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물로 꼽힌다.
장흥 삼합
장흥군민보다 많은 사육두수를 자랑하는 한우, 청정해역 득량만에서 채취한 키조개, 슬로시티에서 키운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장흥삼합’도 별미 중의 별미에 속한다. 세 가지 재료를 단정히 쌓아 한입 쏙. 부드러운 소고기의 육즙과 말캉하게 뜯기는 키조개의 질감, 또 표고버섯의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장흥에는 토요일마다 ‘정남진 토요시장’이 열린다. 전국 최초의 주말시장인 토요시장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저렴한 한우 그리고 고향의 훈훈한 정이 듬뿍 담겨 있는 할머니 장터가 유명하다. 장흥삼합을 비롯해 낙지 바지락 주꾸미 전어 등의 싱싱한 해산물과 함께 전통순두부 곱창전골 등 먹을 것이 풍성하다.산해진미가 춤을 추는 강진의 한정식

전남 강진의 봄에는 게미가 있다. 게미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 그 음식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산해진미가 올라오는 강진 한정식은 전라도 음식 중에 최고로 꼽힌다. 강진의 한정식이 발달한 것은 물자가 풍부하거나 교역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강진이 유배지였기 때문이었다. 유배를 왔지만 입맛은 변하지 않는 법. 오히려 음식에 대한 욕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배 온 귀족이나 양반이 이곳의 특산물을 이용해 양반식 식단과 궁중음식을 차려 먹은 것이 유래다.

강진의 한정식은 예전에는 90가지가 넘는 음식이 상에 올랐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다. 강진 한정식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은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온 ‘해태식당’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예향’(옛 명동식당)의 한정식을 더 쳐준다. 육회는 물론 부드러운 토하젓과 두툼한 광어회, 표고버섯탕수까지 모두 맛있다.강진의 또 다른 먹거리는 뱀장어다. 자연산도 있지만 양식도 많이 키우고 있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목리장어센터를 비롯해 강진의 장어구이는 기름기를 많이 뺀 소금구이를 즐겨 먹는다.

간간하고 알큰한 벌교의 겨울 맛 꼬막

‘벌교에서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전남 보성 벌교 출신의 주먹(건달)들이 많은 것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의병장인 안규홍이 의병활동을 하며 투쟁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벌교에서 또 하나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음식이다. 보성에 붙어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음식 솜씨만큼은 일품이다. 보성의 겨울 먹거리 중 일품은 역시 꼬막이다. 꼬막은 ‘작은 조개’를 뜻한다. 갯벌에서 나는 참꼬막은 수심 10m 정도의 모래진흙밭에서 사는 새꼬막보다 성장은 더디지만 맛은 더 감칠맛이 나고 깊다. 전국 참꼬막의 90% 이상이 전남에서 잡히고 그 반 이상이 여자만 대포와 장암에서 난다. 성장이 더딘 참꼬막은 3년산을 최고로 치지만 새꼬막은 어린 1년생이 보드라운 속살 덕에 더 맛있다. 수분이 많은 참꼬막은 삶아 먹는 게 맛있고 새꼬막은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 것이 좋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꼬막을 가리켜 “살이 노랗고 맛이 달다”라고 하였는데, 단맛이 나는 것은 꼬막에 글리코겐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 소설 《태백산맥》은 꼬막을 이렇게 표현했다.

씹을수록 달콤한 여수 새조개 샤부샤부

겨울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곳이 바로 전남 여수다. 사계절 푸른 남해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음은 물론, 겨울이면 붉게 피는 동백이 해안과 기막힌 절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당연히 먹을 것도 많다. 특히 겨울철은 새조개를 먹는 계절이다. 조개 중에서도 최고의 맛으로 치는 새조개는 어획 기간이 짧고 나날이 양이 줄고 있어 ‘귀족 조개’로 불린다. 새조개는 다양한 별칭이 따른다. 우선 속살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새조개’, 부산과 창원 등지에서는 ‘갈매기조개’, 하동, 남해에서는 ‘오리조개’, 여수지방에서는 ‘도리가이’로도 불린다. 또 해방 무렵 경남 해안에서 집중적으로 잡혀 중요 수입원이 됐을 때에는 ‘해방조개’로 불렸다.
여수 새조개 요리
새조개는 《자산어보》에도 등장했을 만큼 일찌감치 우리 조상들의 식탁에 올랐다. 《자산어보》에는 ‘작합(雀蛤)’, 속명 ‘새조개’라고 기록돼 있으며 “큰 것은 지름이 4, 5치 되고 조가비는 두껍고 매끈하며, 참새의 빛깔을 지니고 그 무늬가 참새 털과 비슷하여 참새가 변하여 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적고 있다. 새조개는 빈혈과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고 남녀노소 체력을 보강해주는 뛰어난 스테미너 음식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먹는 새조개의 80%가 여수산이다. 새조개는 오래 익히면 질겨지고 본연의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살짝 익혀 먹는다. 조갯살을 국물에 넣고 10초간 담갔다 꺼내서 먹는데 입안에 넣으면 고소하고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강하게 퍼진다.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홍어와 나주곰탕

전남 나주는 맛있는 음식의 보고(寶庫)와도 같은 곳이다. 전라도 음식의 최고봉인 홍어의 중심지가 바로 나주다. 홍어하면 흑산도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국내 삭힌 홍어의 70%가 유통되는 곳이 바로 나주 영산포다. 영산강 물길을 따라 배가 다니던 시절, 홍어의 고향 흑산도에서 영산포로 오는 데는 5일 이상 걸렸다. 운송 도중 홍어가 상하곤 했는데, 이게 기가 막힌 맛을 냈다. 영산포 사람들이 삭힌 홍어 맛을 발견하고 먹기 시작한 것이 영산포 홍어의 시작이다. 홍어 한 점에 탁주 한 사발을 걸쳐주면 금상첨화다. 영산포 등대 뒤에는 30개가 넘는 홍어 전문점이 거리를 이루고 있다.
나주 삭힌 홍어
홍어는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지만 나주곰탕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나주에 곰탕이 유명해진 것은 주변에 넓은 곡창지대가 있다 보니 곰탕의 재료인 소가 흔했고, 근처에 관아가 있어 여유 있는 고을 아치들이 곰탕을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나주의 곰탕은 양지와 사태를 주로 쓰고, 삶는 과정에 차별화된 노하우가 있다. 나주곰탕은 장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 남도의 육류문화를 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말갛고 시원한 국물에 묵은지와 깍두기가 어우러져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나주곰탕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금계동 일대에 자리한 나주곰탕 거리에 가면 ‘하얀집’ ‘남평’ ‘노안’ 등 전통적 곰탕집이 여럿 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