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30년째 제자리인 '대미 공공외교 개혁'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대미(對美) 공공외교 기관 개혁 문제를 놓고 워싱턴DC가 시끄럽다. 퇴출 위기에 몰린 기관장이 한국 정부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하고 다닌다거나, 관련 정부 기관에 구조조정을 막으려는 전화가 벌써부터 쇄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현재 워싱턴DC에서는 한미경제연구소(KEI)와 한미연구소(USKI·존스홉킨스대 산하 기관), 한국국제교류재단(KF) 워싱턴사무소가 한국 관련 우호 여론 조성을 위해 연구와 세미나 개최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매년 약 60억원의 한국 정부 예산이 지원된다.개혁 초점은 KEI와 USKI에 모아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안보와 통상 분야 대미 관계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현장에선 제대로 된 대응 보고서 하나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이들 ‘불임기관’ 개혁 방안을 열심히 다듬고 있다고 한다.

사실 두 기관에 대한 개혁 논의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KEI와 USKI가 설립된 것은 각각 1982년, 2006년이다. “두 기관 역사만큼이나 개혁 논의도 오래됐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개혁은 번번이 실패했다. 명확한 비전 없이 인적 청산 위주로 개혁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혀 유야무야됐다. 낙선(落選) 후 해당 기관에서 연수 형태로 신세를 진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가 ‘흔쾌히’ 이들 기관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 “이들 예산을 삭감하려다 윗선에서 전화가 많이 와 결국 손들었다”는 정부 관계자의 토로는 놀랄 일도 아니다.KEI 등의 개혁이 ‘30년 도루묵’이 안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공공외교 강화라는 ‘대국적’ 차원에서 이들에게 신세진 인사들부터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 다음이 비전을 가진 개혁을 하는 것이다. 워싱턴DC에 무엇이 필요하고 불필요한지를 정리한 후 기관별로 명확한 역할을 줘야 한다. 필요하면 기존 조직에 대한 발전적 해체와 신설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또 하나. 개혁 얘기가 나오니 기관 관리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인사권도 예산권도 없는 모 부처에서 고위 인사가 자리를 만들어 내려온다는 얘기가 나돈다. 틈만 보이면 자리부터 만들고 보려는 ‘황당한’ 발상부터 접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