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떠안은 대한광통신 '턴어라운드'… 큐캐피탈의 '마법'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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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의 기업 구조혁신 (9) 재무악화 덫에 빠진 기업 살린 큐캐피탈사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만이 구조조정이 아니다. 썩은 사과들이 즐비한 광주리에서 멀쩡한 사과를 꺼내 깨끗이 씻어내는 일도 구조조정이다. 국내 사모펀드(PEF) 큐캐피탈파트너스가 인수해 정상화한 대한광통신이 대표적이다. 대한광통신은 국내 최대 광섬유 및 광케이블 제조업체다. 통신·인터넷망은 공공 투자 비중이 높아 사업이 안정적이고 성장성도 높지만 모회사인 대한전선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며 대한광통신도 휘청거렸다. 큐캐피탈 인수 무렵인 2012년 8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100억원에 가까운 금융 비용에 4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인수 5년째인 지난해 대한광통신은 사상 최대 실적(추정 매출 1400억원, 영업이익 150억원)을 달성했다.
적자사업 정리·자산 매각으로 500억 넘던 빚 10분의 1로 줄여
인수 5년 만에 최대 실적 달성
비용절감에 과감한 투자까지… 의료용 광섬유 개발 성공 이끌어
◆모회사 재무 악화에 대한광통신도 ‘흔들’대한광통신의 전신은 2000년 대한전선의 광섬유 사업부가 분사한 ‘옵토매직’이다. 1990년대 말 정부 주도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이 활발해지자 대한전선이 광통신 관련 사업을 키워보겠다며 분사시켰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무수광섬유를 개발했고 2010년에도 역시 국내 최초로 ‘구부림강화광섬유’ 양산에 성공했다.
분사 이후 ‘알짜 계열사’로 대접받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이 됐다. 그룹의 신규 사업이나 모회사 대한전선의 지원을 떠맡아야 했다. 예를 들어 2007년에는 의약품 연구개발(R&D) 업체 케미존과 합병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111억원을 투자했지만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케미존은 청산했다. 2012년 대한전선의 광케이블사업을 인수한 것도 모회사의 재무 부담을 덜기 위한 거래였다. 이후 대한전선에 로열티를 지급하거나 지급보증을 서주는 등 모회사로 인한 재무 부담은 더욱 늘어났다.◆그룹 구조조정 지원하며 투자 기회 확보2012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대한전선은 대한광통신 매각을 결정하고 큐캐피탈을 인수자로 맞았다. 큐캐피탈은 세 번에 걸친 투자로 대한광통신 경영권을 확보했다. 우선 대한전선이 보유한 대한광통신 구주 42.61%를 279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설윤석 전 대한전선 사장이 보유한 대한광통신의 신주인수권(워런트)을 25억원에 매입했다. 워런트 행사 대금 110억원을 대한광통신에 납부하면서 지분율을 53.22%까지 높였다. 마지막으로 대한광통신이 발행하는 2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며 투자를 마무리했다. 총 투자금액은 614억원이었다.
대한광통신은 큐캐피탈의 워런트 행사대금 110억원과 BW를 발행해 수혈한 200억원, 내부 자금 등 총 530억원을 다시 대한전선이 시행한 유상증자에 사용했다. 대한전선이 자율협약 유지를 위해 채권단과 약속한 유상증자였다. 대한전선그룹의 구조조정 전반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셈이다.
◆회사 정상화해 창업자 3세에게 재매각큐캐피탈은 인수 뒤 곧바로 경영 정상화에 착수했다. 2014년 원가 절감 컨설팅을 받아 전년에 비해 50억원 넘게 비용을 줄였다. 꽉 막혀 있던 국내 금융권 지원도 나서서 뚫었다. 새마을금고 등을 돌며 대한광통신의 성장성과 구조조정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원자재 구매 등에 필요한 자금을 빌렸다.
2015년에는 대한전선과의 계열분리를 통해 금리를 정상화했고, 2016년에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광케이블 공장 부지와 건물을 310억원에 매각해 채무 상환금을 마련했다. 한때 500억원이 넘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47억원까지 줄었고, 부채비율도 105%로 안정됐다.
비용 절감만 외친 건 아니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설비 증설, 신소재 개발 등에 25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다. 그 결과 의료용 광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오치환 대한광통신 대표는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용 광섬유 ‘프로브’의 제조·판매 허가를 획득했다”며 “큐캐피탈이 대한광통신의 기술력을 믿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라고 말했다.큐캐피탈은 이렇게 정상화한 회사를 대한전선 창업자 3세인 설 전 사장 등에게 되팔며 투자를 회수했다. 대한광통신 보유 지분 53.22% 중 절반을 설 전 사장이 콜옵션을 행사해 330억원에 인수했다. 나머지는 작년 9월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하며 291억원을 회수했다. BW도 상환과 블록딜을 통해 처분했다. 김동준 큐캐피탈 대표는 “대한광통신 투자로 5년 동안 연평균 11%의 수익을 올렸다”며 “회사도 살고 투자자도 고수익을 거둔 성공적인 구조조정 사례”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