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0만 디지털 혁신 인재' 키우자

"디지털 혁신경쟁의 관건은 인재
미·중 수준의 유연한 법제도로
도전적 실험·제품화 길 터줘야"

차상균 <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 >
세계는 1940년대 맨해튼 프로젝트,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보다 더 큰 규모의 국가 간 위상 변화를 가져올 전방위적 디지털 혁신 경쟁에 들어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 변화의 두 축은 실리콘 밸리의 혁신 DNA를 앞세운 미국과 국가자본주의, 거대한 규모의 자국 시장, 창업 1세대의 역동성 등을 갖춘 중국이다.

인구 5000만 명의 대한민국이 향후 100년간 미·중의 디지털 패권주의로부터 자유롭게 생존, 번영하기 위해서는 세계 5위권의 디지털 혁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자본과 시장 규모에서 열세인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키우려면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디지털 혁신 인재를 양성하고 이 인재들이 자유롭게 상상의 혁신을 실험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디지털 혁신 인재는 제조 유통 금융 에너지 의료 엔터테인먼트 공공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 지식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의 새로운 디지털 도구로 무장한 통섭형 창의 인재들이다. 혁신 창업, 중소·중견·대기업의 디지털화 모두 새로운 디지털 시각으로 문제를 조명하고 도전적 실험정신과 새로운 도구로 문제를 푸는 디지털 혁신 인재가 하는 일이다.

미국의 아마존 구글 등 4차 산업혁명 선도 기업들은 이미 세계를 대상으로 고급 디지털 혁신 인재들을 유인하고 있으며, 중국도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같은 혁신 대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인재 육성과 해외 인재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의 ‘천인(千人)계획’은 시진핑 주석이 부주석 때부터 챙겨온 해외 최고급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으로 없어지는 일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일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100만 디지털 혁신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런 규모의 인재육성 없이는 미·중 등 디지털 패권 강국으로의 고급인력과 일자리 유출을 방어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학문 간 경계의 벽이 높은 우리 대학은 이런 인재 양성과는 괴리가 크다.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분야의 학사 전공자를 선발해 빅데이터와 AI를 교육하는 전문대학원을 선도 대학에서부터 시작해 전국 거점 대학에 확산할 필요가 있다.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성공 요건은 이런 인재들이 도전적 실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꼽힌다. 홍콩과학기술대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 선전에서 창업해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한 드론 기업 DJI도 창업 초기에 사업 모델을 찾지 못해 고전했다. 끊임없는 실험 끝에 드론과 카메라를 결합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복합 기술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게 됐다.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혁신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연구 개발 속도를 빠르게 한다. 반면, 법령에 요건과 기준을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우리의 성문법 체계는 새로운 제품, 서비스의 연구 개발, 사업화에 걸림돌이 된다. 또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축적된 진흥 법령과 여러 부처에 분산된 책임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특성인 ‘경계 파괴적 혁신’과 맞지 않는다. 미국 아마존 구글, 중국 텐센트 알리바바 핑안보험 모두 전통적 산업 경계를 파괴하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 중국 수준의 신속한 디지털 혁신을 보장하는 법제도의 유연성과 단순함 없이 4차 산업혁명의 세계 5위권 선도 국가가 될 수는 없다.

기존의 규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화 과정에서 축적된 불합리한 규제의 자발적 혁파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범(汎)국가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법 규정이 없더라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연구개발 및 출시를 먼저 허용하고 필요에 따라 사후 규제하도록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대(對)국민 규제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 새로운 혁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복수의 부처를 상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법령의 통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차상균 <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