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거래소 시스템 오류·이용자 몰려… 새 계좌 발급 안돼 '발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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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첫날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과 업비트를 이용 중인 A씨(28)는 30일 오전 9시 업비트에 실명확인이 가능한 가상계좌(신가상계좌)를 요청했다. 이전 가상계좌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서다. 며칠 전 기업은행에서 튼 계좌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입력하고 실명확인도 받았다. 하지만 신(新)가상계좌는 오전 내내 발급되지 않았다. 화면엔 ‘먼저 신청된 계좌 인증을 처리 중이니 잠시 후 다시 시도하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떴다.
업비트·코인원·코빗 등 대여섯 시간 발급 지연
신한은행, 가상계좌 발급 안해…코인원만 신규회원에 계좌
"일부 지점, 심사 너무 깐깐" 고객들 불만 표시하기도
A씨는 빗썸을 이용하려고 점심시간 농협은행 영업점을 찾았다. 빗썸에서 신가상계좌를 받으려면 반드시 농협은행 계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농협은행 직원은 “30만원 이상 이체할 수 있는 계좌를 개설하려면 재직증명서를 가져와야 한다”며 계좌 개설을 거절했다. 그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업비트에서 새 가상계좌가 발급됐다는 것을 확인했다.◆요청자 밀려 계좌인증 지연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는 이날 오전 일제히 신가상계좌 발급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거래소에선 시스템 불안정과 이용자 폭주로 가상계좌 발급이 지연되는 등 차질이 빚어졌다. 업비트는 오전 내내 신가상계좌 발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일부 이용자는 실명인증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코인원에서도 시스템 오류가 잇따라 발생해 신가상계좌 발급이 지연됐다. 코인원은 이날 거래소 업체 중 유일하게 기존 이용자뿐만 아니라 신규 거래자에게도 신가상계좌를 발급했다.
반면 빗썸에선 농협은행 계좌의 실명인증과 신가상계좌 발급이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졌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추가로 입금할 때만 신가상계좌가 필요한데 코인 시세가 하락하고 있어 거래자가 크게 몰려들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대부분 가상화폐 거래 분위기는 차분했다. 거래량이 줄고 시세도 대다수 코인은 전날 대비 5% 안팎의 하락세를 지속했다.실명확인 입출금 제도는 가상화폐 거래소와 이용자의 계좌가 동일한 은행일 때만 입출금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비트 이용자는 기업은행, 빗썸은 농협은행과 신한은행, 코인원은 농협은행, 코빗 이용자는 신한은행 계좌가 반드시 필요하다. 거래소들은 우선 입금 때만 이를 적용한 뒤 출금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가상계좌 발급 안 한 신한은행
가상화폐 거래를 맡은 은행 가운데 농협은행 기업은행과 달리 신한은행은 이날 신가상계좌 발급을 시작하지 않았다. 빗썸은 ‘신한은행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는 준비 중이며 확정되는 대로 공지하겠다’고 알렸다. 코빗도 이날 신한은행의 신가상계좌를 발급하지 못했다. 코빗은 ‘실명확인 계좌 등록 절차 중 신한은행의 고객확인 절차에서 서버 이슈가 발생했다’고 공지했다.이 때문에 일각에선 신한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에 손을 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지난 12일 신한은행은 가상화폐 거래로 자금세탁 등 은행 리스크가 커진다고 판단해 기존 가상계좌를 조기에 회수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가상화폐 거래자들이 집단적으로 신한은행 계좌와 신한카드를 해지하는 등 보이콧 운동을 벌이자 이틀 만에 철회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실명확인, 자금세탁 방지 등 정책적 이슈와 사소한 기술적 문제가 겹쳐 가상계좌 발급이 늦어지고 있다”며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일선 은행 창구는 한산
당초 예상과 달리 주요 은행 영업점 창구 분위기는 차분했다. 기자가 이날 찾은 서울 마포구 농협은행 공덕지점 내 세 줄로 늘어선 객장 소파엔 한 명의 고객만 대기하고 있었다. 기업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 영업부 등 직장인이 많은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한 비대면 계좌 개설이 이전보다 2~3배가량 증가했다”며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가상화폐 거래자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일부 지점에선 엄격해진 통장 신규 개설 심사를 둘러싸고 불만을 나타내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가상화폐 관련 사이트에선 “지난여름만 해도 은행들이 깐깐하게 확인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재직증명서까지 요구한다”며 “통장을 개설하러 갔을 뿐인데 창구 직원이 조목조목 따지듯이 물어봐 죄인 취급받는 것 같았다”는 불만이 올라왔다.
이현일/윤희은/김순신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