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 물갈이 되자… '적폐청산' 몸살 앓는 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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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적폐청산 TF'각 부처가 이른바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과거 정부의 정책적 판단을 뒤엎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도 적폐청산을 둘러싸고 조직 내 갈등이 커지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낙하산으로 임명된 기관장들이 정부와 ‘코드 맞추기’ 차원에서 주도하는 적폐청산 움직임에 노조까지 가세했다.
가스안전공사 신임 사장, 반부패 외치며 TF 발족
일각선 "전문성 부족하니…정부와 코드 맞추나" 비판
노조, 임원에 '적폐' 딱지
공공기관장 퇴임하는 날 "단체협약 서명하고 나가라"
거부하자 "적폐세력" 욕설
다른 곳선 사장 선임 반대…고위임원에 '부역자' 낙인도
이달 초 취임한 김형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지난 22일 “과거 적폐를 청산하고 조직을 쇄신하겠다”며 ‘청산과 혁신 TF’를 출범시켰다. 김 사장은 “가스안전관리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렴과 반부패”라고 주장했다.김 사장은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출신으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충북 활동가 모임’에 몸 담았다. 민주당 충북도당 부위원장, 민주당 비상근부대변인을 거쳐 원내대표 비서관을 지낸 정치인이다. 가스안전 분야 경험이 거의 없는데도 전격 임명됐다. 공사 관계자는 “가스안전과 적폐청산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에너지 공기업은 노조가 고위임원 한 명을 ‘부역자’로 낙인 찍어 발표했다. 해당 임원이 과거 노사 협의 때 사측을 대리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주도했다는 게 이유다. 또 다른 에너지 공기업은 사장을 공모 중인데, 후보가 두 명으로 압축됐다는 뉴스가 나오자 노조가 그중 한 명을 ‘적폐’로 규정해 선임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에서 적폐로 몰린 후보는 내부 임원 출신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작년 7월 ‘10대 적폐 기관장’ 리스트를 실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리스트에 올랐다. 한 공기업의 10년차 직원은 “적폐청산이란 화두가 채용비리 근절 등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노조에 불리한 성과연봉제를 되돌리기 위해 이를 추진한 임원을 적폐 세력으로 몰고가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최근 물러난 한 공공기관장은 퇴임식이 있던 날 노조위원장에게 봉변을 당했다. “노사 단체협약서에 서명하고 가라”는 위원장 요구에 기관장은 “퇴임식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아 내용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니 나중에 기관장 직무대리와 상의하라”고 답했다. 그러자 위원장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적폐세력”이라며 욕설을 퍼부었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까지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기관에 따르면 노조위원장은 노조 전임자 인사평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해당 기관은 A~E등급까지 5단계로 인사평가를 하는데 규정상 노조 전임자 등 근로시간 면제자는 중간인 C등급을 받도록 돼 있다. 전임 기관장들은 노조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노조 전임자 대부분에게 A등급을 줬지만 최근 퇴임한 기관장은 관례를 깨고 규정대로 C등급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