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경영과 기술'] 블록체인, 신뢰와 직접거래의 기반 기술
입력
수정
지면A33
(11) 블록체인의 본질블록체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암호화폐(가상화폐)의 원조인 비트코인은 ‘공식 화폐의 대체’라는 혁명적 목적을 갖고 태어났다. 우리는 디지털화한 금융의 혜택 속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으로 송금하면 상대방의 통장에 바로 입금되고 상대방은 입금된 돈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돈은 즉시 이동하지 않는다. 두 사용자의 은행이 하루 마감을 하고 은행 간 주고받은 금액을 정산하는데, 차액의 송금은 금융결제원이라는 중개기관을 통해 보장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실시간 금융의 혜택을 보는 것은 실질 자산과 금융의 거래 정보가 분리돼, 정보는 디지털 네트워크로 실시간 거래를 하고 금융 및 중개기관들에 의해 자산의 실질 이동이 차후에 안전하게 이뤄지는 이중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중개기관은 실물자산의 안전한 보관과 이관, 그리고 거래 원장(은행의 경우 통장)을 정확하게 기록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돈을 번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거래원장 분산저장하고 상호감시
사토시 나카모토가 설계한 비트코인은 디지털화한 거래정보 자체를 화폐화해 실물 화폐 자체를 없애자는 시도다. 그러면 은행이나 금융결제원이라는 중개기관에 실물 자산의 보관과 이전을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를 실현하는 데는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해 왔다. 하나는 디지털 화폐의 위변조 가능성이다. 디지털 화폐란 결국 컴퓨터 파일이라서 무제한 복제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이중사용의 문제’라고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은행이 없을 때 누가 통장(거래원장)을 관리하고 정확성을 보장하느냐의 문제다. 이를 암호화 기술과 P2P(개인 대 개인) 기술에 ‘채굴’이라는 경제적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해결한 것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은행을 예로 들면, 은행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를 10분 단위로 ‘블록’이란 거래원장을 만들고 이 블록들을 암호화폐 획득을 기대하고 참여하는 채굴업자들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암호화해서 분산 저장하는 것이다. 은행의 중앙화된 시스템을 채굴업자들이 제공하는 분산 시스템이 대체해 거래 원장을 관리하고 조작 가능성을 상호 감시하는 체제다. 채굴업자들이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유일한 이유는 대가로 ‘코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우리가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부동산 등기라는 증서의 소유자가 실물 자산의 소유주라는 것을 인정하는 법적 체제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에 사용된 블록체인은 은행을 대체하는 화폐에 대한 거래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더리움의 블록체인은 등기부와 같은 정형화된 정보(스마트 계약)를 안전하게 거래하기 위한 확장이다. 이 확장으로 주식, 채권, 부동산 등기부 등 어떤 자산 거래에도 활용될 수 있으며 신분증, 졸업증명서 등과 같이 정형화된 어떤 정보도 중개기관 없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런 광범위한 응용성으로 인해 가상화폐 회의론자들도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따라서 블록체인은 암호화와 채굴업자들의 검증이라는 자발적 협력체계가 결합해 그 어떤 증서나 계약의 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뢰의 기술’이라고 하고, 이런 자산 거래의 원장을 채굴업자의 분산된 네트워크에서 공중이 공개 관리한다는 점에서 중개업자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블록체인은 증서(정보)의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이지 실물의 진위를 담보하는 기술은 아니다. 블록체인 자체만으로는 전자투표 시 대리 투표 가능성이나 실물 그림의 위작 거래를 봉쇄할 수 없다.
처리속도·표준화 등 갈 길 멀어블록체인으로 인해 중개업자가 소멸하리라는 것도 과장된 희망이다. 증권거래에서 거래원장은 이미 전산화돼 있고 거래원장의 안전한 거래는 고객을 유치하는 가치가 아니다. 증권사의 가치는 차별화된 금융상품과 고객에게 맞는 상품 권유, 금융상품에 관한 리서치와 교육, 증명된 수익률 등이다. 이는 블록체인의 역할인 거래원장의 안전한 보호 및 관리와는 무관하다.
경제의 새로운 대안은 기존 시스템보다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비용을 절감할 때만 채택된다. 믿을 수 있고 효율적인 중개업자는 종종 산만한 직접거래보다 소비자들에게 더 매력적이다. 인터넷 초기에 P2P 기술을 활용한 분산 네트워크를 통해 음악 파일 등을 공유하고 코인을 통해 거래하는 파일 공유 서비스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느린 속도와 보장되지 않는 품질,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이 분산시스템은 아이튠즈라는 애플의 중개 시스템에 의해 소멸됐다. 분산 직접 거래시스템이 중개시스템을 대체하려면 비용과 편익 면에서 압도적으로 앞설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속도와 대용량 처리의 확장 가능성, 다양한 기능의 표준화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블록체인이 갈 길은 아직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