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너무 앞서간 금융위의 특화보험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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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민 금융부 기자“펫(pet)보험 등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보험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죠. 다만 ‘규모의 경제’가 굳어진 시장 상황에서 특화보험사가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을지….” 기자가 최근 만난 한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말끝을 흐리며 답답해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소액특화보험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손해보험산업 혁신·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이른바 ‘돈 안 되는’ 보험상품 판매 및 신상품 개발에 보험사들이 소극적이어서 생활 밀착형 보험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보험사를 비롯한 특화보험사의 설립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계획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5일 연세대 강연에서 특화보험사 활성화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업계 반응은 냉랭하다. 금융위 계획대로 진입 요건을 낮추더라도 단일 상품을 다루는 특화보험사가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앞서 자동차보험 온라인 전업사로 출범한 악사손보와 더케이손보는 이익을 내지 못해 종합손보사로 탈바꿈했다. 같은 온라인 전업사였던 하이카다이렉트도 적자 누적으로 2015년 모회사인 현대해상에 통합됐다. 더욱이 온라인보험시장 매출의 80% 이상을 대형사들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소규모 특화보험사가 자리를 잡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 많다. 무작정 특화보험사를 설립한다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금융위가 대표 특화보험상품으로 지목한 펫보험도 상품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과잉진료 개선 및 손해율 산정 작업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펫보험 활성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분석이다. 당국이 업계와 구체적인 협의 없이 ‘보험의 사회적 가치’만을 내세우며 너무 앞서나간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보험이 출시돼야 한다는 당국의 인식은 맞다. 그렇다면 무작정 상품 출시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특화보험이 시장에서 어떻게 생존해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지금 당국과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 방안을 찾아도 결코 이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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