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융감독원 권위가 떨어진 이유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
“과거 금융회사 임원 자녀를 살펴보면 같은 금융업종에서 근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같은 금융회사에서 일한 경우도 제법 있고요.”

6일 만난 한 은행 임원 얘기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거진 은행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해 별로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채용 시즌이 되면 각 은행 임원 휴대폰은 정치인과 공무원, 거래 기업, 다른 회사 임원들 채용 청탁으로 불이 난다. 보통 청탁이 들어오면 대개 연필로 뽑아야 할 사람의 서류에 표시해 뒀다가 나중에 지우든지, 아예 구두로만 채용 지시를 내리거나 부탁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채용 비리 의혹이 발견된 은행들은 관련 자료를 너무 잘 보관한 게 죄일 수도 있다”고 했다.이상한 점은 금감원이 채용 비리 의혹을 발표했는데도 너무나 당당한 은행들의 태도다. 은행들은 “채용 관련 리스트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채용 절차는 문제가 없었고 비리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은행들이 이례적으로 강력 반발하고 나서자 오히려 금감원이 당황하는 모양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감원 권위가 얼마나 떨어졌으면 은행들이 대놓고 반발하겠느냐”며 “이 같은 상황 자체가 모욕적이고 수치스럽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은행들의 이례적인 반발에 대해 한 금융계 원로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선 은행들이 빠져나가지 못할 채용 비리 증거를 금감원이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금감원이 명확한 증거 없이 으름장만 놓고 있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자세한 얘기를 언론에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증거 자체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론 금감원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실제 금감원 간부가 특정인의 채용 청탁을 받아 구속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금감원 자체가 깨끗하지 않다 보니 피감 금융회사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원로는 여기에다 “정권이 바뀔 때 금감원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교체에 앞장선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금감원 스스로 정치 조직이 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