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무대 박차고 관객 곁으로… 젊은 예술가의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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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기업가정신' 확산고고하게 무대 위에서 ‘폼’ 잡던 예술인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관객들과 유리된 채로는 예술행위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경기가 다소 호전돼도 “공연 보기가 부담스럽다”는 관객,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안주하며 소통하지 않는 예술인들을 싫어하는 관객들을 마냥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며 색다른 방식으로 관객층을 넓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최근 낸 ‘2018 공연예술트렌드조사 보고서’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이 같은 경향을 올해 공연시장을 이끌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관객과 유리된 채로는 예술행위 큰 의미 없다"
세계적 피아니스트 손열음, 트로트 가수 박현빈과 공연
클래식 앙상블 '노부스 콰르텟'… 연예인처럼 화보 찍어 홍보
빌리 엘리어트 등 뮤지컬 기획사
대중 체험 마케팅 활발
예술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다젊은 예술가들은 틀을 과감히 박차고 나온다.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손열음은 작년 중반 트로트 가수 박현빈과 한 무대에 섰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콘서트홀에서 트로트 곡 ‘무정 블루스’와 ‘샤방샤방’의 피아노 반주를 했다. 정통 클래식과 트로트의 합동 무대였다. 박현빈도 “이런 무대는 처음”이라고 했다. 객석에선 “낯설다”면서도 “고급 예술의 대중화, 대중가요의 고급화 가능성을 봤다”는 평이 나왔다.
연주의 질은 지키되 접근 방식은 대중화하고 있다. 공연과 녹음에만 집중했던 기성 예술가들과 다르다. 예를 들어 화보와 뮤직비디오 제작으로 ‘팬심’을 결집한다. 지난해 결성 10년을 맞은 실내악단 노부스 콰르텟은 멤버들의 사진을 수록한 수첩을 굿즈(문화상품)로 내놨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독일 베를린방송교향악단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모인 실내악단 클럽M은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홍대 앞 거리에서 버스킹(길거리 즉석 공연)을 했다. 이들의 공연 영상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타고 클래식에 관심이 없던 대중에게도 전해졌다.
현대무용단들도 색다른 시도의 중심에 있다. ‘현대무용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관객들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지난해 11월 신작 ‘돈 두(Don’t do)’를 선보이기 전 웹툰작가를 섭외해 4컷 만화를 매주 한 편씩 8주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연재했다.기업가정신으로 공연 생태계 활기
공연기획사들은 ‘공연’을 넘어 ‘체험’을 파는 마케팅도 펼친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기획사 신시컴퍼니는 지난달 관객에게 발레와 탭댄스를 가르치는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나도 빌리 엘리어트’를 주제로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함께 극에 나오는 안무를 배워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 회당 20명을 모집한 4회 수업 신청이 모두 마감됐다.
‘백스테이지 투어’는 이제 누구나 아는 문화상품이 됐다. 이전엔 관객에게 공개하지 않던 무대 뒤편을 열어주는 것이다.신생 벤처기업이 사업 개요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일반인의 투자를 받는 ‘크라우드 펀딩’도 문화계에서 속속 시도되고 있다. 공공이나 민간 재단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시도다. 지난해 5월 ‘이등병의 엄마’라는 연극이 막을 올렸다. 군에 보낸 아들을 잃은 유족들이 나서서 군 인권 문제를 고발한 작품이다. 기획자는 이 작품의 개요를 포털사이트 다음의 펀딩 플랫폼 ‘스토리 펀딩’에 올렸다. 2398건의 후원으로 6389만원이 모여 이 작품은 무대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수년 전부터 영미권 예술대학에서는 창업가정신 수업이 정규 과정으로 도입되고 있다. 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앞으로 예술가들 사이에 폐쇄된 연습실에서 나와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시도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