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뱉어낸 새우… 호반건설 '대우건설 인수 포기' 왜?

아파트 분양만 했던 호반건설, 해외 우발채무 감당 못한 듯
"대우 품으려다 호반 날릴라"…헐값·특혜매각 등 논란도 부담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9일 만에 대우건설 인수 포기를 선언한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해외부실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1년 매출이 1조2천억원 수준인 호반건설 입장에서 해외 현장 한 곳에서 3천억원이 넘는 부실이 발생한 것을 보고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달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본입찰에 단독 입찰하면서, 호반이 대우를 인수하면 최근 경영실적이 부진한 해외사업 부문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왔다.

해외사업을 해본 적이 없는 호반건설 입장에선 주택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지 않은 해외부문을 축소하거나 분리 매각할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이었다.이에 대해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이달 초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오일 달러가 올라갈 것이고, 특히 동남아 쪽에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핵심이고 해외사업을 계속 키워나가겠다"며 대우건설의 해외사업 매각설을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7일 대우건설이 지난해 4분기 실적 공시를 통해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의 기자재 재제작에 따른 3천억원 이상의 잠재 부실 문제를 공개하자, 호반건설은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동안 택지개발지구의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안전한' 사업만 추진해온 호반건설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 부실들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호반건설은 특히 대우건설이 해외에서 추가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해외 현장에는 돌발 상황들이 늘 잠재해 있고 많은 건설사들이 사전 예고없이 해외부실을 순차적으로 반영해온 점을 감안할 때 대우건설의 우발 채무 규모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쏟아지자 결국 호반건설은 인수 포기로 방향을 틀었다.대우건설은 현재 카타르, 오만, 인도, 나이지리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지에서 해외사업을 진행 중이다.
호반건설 M&A(인수합병)팀은 대우건설 실적이 공개된 7일 오전 9시부터 온종일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이어 7일 저녁 산업은행 관계자들과 긴급 회동을 갖고 대우건설의 추가 부실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으며 이 자리에서 인수 포기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부실이 인지된 가운데 추가로 정밀실사와 가격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현 단계에서 포기하는 게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은 아직 양해각서(MOU)나 주식매매계약(SPA)은 체결하지 않은 상태여서 매각 의사를 철회해도 별 문제는 없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입찰 당시 대우건설 실적은 3분기까지만 보고 받았고 본입찰 후 실사를 할 때도 해외 부실 등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장래 해외사업 등에서 나타날 손실 규모가 예측 불가능했다는 점이 인수 포기 결정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우건설의 모로코 사피 발전소의 경우 지난해 3분기에도 23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바 있다.

역시 3분기에 카타르 고속도로 현장에서도 공기 연장 등으로 1천450억원의 손실이 반영됐다.

앞서 2016년에는 수주산업 회계처리 기준 변경을 명목삼아 사우디 자잔 플랜트 현장과 알제리 플랜트 현장에서 각각 4천500억원과 1천100억원 등의 무더기 손실을 털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는 대우건설의 해외사업 관리 능력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에는 현재 "산업은행이 뒤늦게 대우건설 해외부문의 잠재 부실 규모를 보고 받고 분노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호반건설의 발 빠른 인수 포기 결정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정치권 등으로 부터 쏟아진 특혜 매각 의혹과 헐값 매각 논란, 대우건설 노동조합 등 내부 불만 등도 작용했다.

여러 과제들이 부담스럽던 차에 해외부실 문제까지 터지자 재빨리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대우건설의 헐값 매각 논란은 본입찰 직후부터 불거졌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지분 매입에 3조2천억원을 투입했는데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지분 50.75%에 대한 인수 금액은 1조6천억원으로 절반 수준이어서 '반값 특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각 대상 지분 50.75% 중 40%만 우선 매입하고 나머지 10.75%는 2년 뒤에 인수하기 위해 산업은행에 풋옵션을 부여한 것을 놓고 '변칙 매각' 등 특혜 논란이 제기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달 초 "이번 대우건설 매각은 호반건설에 특혜를 주기 위해 특정한 방향성을 두고 추진된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부터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먹을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고 주장했다.

'호남기업'에 대한 정권 차원의 특혜라는 것이다.

대우건설 직원들의 불만도 만만찮았다.

시공능력평가 13위의 '새우(호반건설)'가 3위의 '고래(대우건설)'를 삼키려 한다'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출했고 대우건설 노동조합도 호반건설의 인수에 대해 '밀실 매각'이라며 우선협상자 선정 취소를 요구했다.

대우건설의 해외 부실로 인해 호반건설의 인수금융 조달이 난관에 봉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호반건설은 산업은행에 당장 지불해야 하는 지분 40%에 대한 대금 1조3천억원 가운데 6천억원 가량을 시중은행 등의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할 예정이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여러 논란을 잠재우고 대우건설과 하나로 융화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해외 부실까지 터지니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며 "김 회장 입장에서 대우건설 인수로 인해 자칫 본인 손으로 일군 호반건설까지 부실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애초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도 없이 충동적으로 입찰에 참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건설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은 여러 서류상의 계열사들을 동원해 공공택지 분양을 받아 안정적으로 아파트 분양 사업만 해온 곳으로 리스크가 큰 개발사업, 특히 변수가 많은 해외사업에 대한 DNA가 없는 회사"이라며 "대형 건설사의 해외 잠재부실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것인데 이 정도의 리스크도 예상치 못하고 인수 의향을 밝혔다는 것도 놀랍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