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산소 부족한 '죽음의 바다' 50년 새 10배 급증… '온난화의 저주'

'산소 제로' 바다도 4배
해수면 온도 올라가면서 바닷물 속 산소 유입 차단
어류·포식자 개체 수 급감

복원·오염 방지 고삐 좨야
개도국 어획량 크게 줄고 관광산업도 고사 위기 몰려

한반도 동해 회복 조짐
2000년대 이후 심층수괴 생겨
용존산소 고갈 속도 늦춰
파나마 북서부 보카스델토로 앞바다에 사는 산호와 게가 바닷물의 저산소화 영향으로 죽어가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세계 죽음의 바다 현황. 미국 스미스 소니언연구소 제공
플라스틱 폐기물 유입이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적’이 바다를 위협하고 있다. 바닷물에 산소가 줄어드는 ‘탈(脫)산소화 현상’이다. 바닷물 속 산소는 모든 해양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지구에 있는 산소의 절반은 바다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바닷물 속 산소가 고갈된 ‘죽음의 바다’가 늘면 인류 생존이 뿌리째 뒤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죽음의 바닷물 4배 늘어미국 스크립스해양연구소와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연구진은 최근 50년간 물속에 산소를 전혀 포함하지 않은 바닷물이 4배나 늘고 산소 함유량이 떨어진 이른바 ‘죽음의 바다’가 10배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탈산소화의 주범으로 꼽고 있다. 유엔 산하 해양과학전담 기구인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의 블라디미르 리야비닌 사무총장은 “영양분 유입과 기후 변화의 영향이 겹치면서 이제는 해양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죽음의 바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 바닷물 속에 산소가 섞여들어 가는 것을 어렵게 한다. 지구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육지에 가까운 강어귀를 포함한 연안 해역의 산소 감소에는 농업 활동, 하수 처리, 화석연료 사용 등을 통해 배출되는 질소와 인 같은 영양물질 증가가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조류가 다량으로 발생하면 쉽게 산소가 고갈된다. 따뜻한 바다에 사는 동물은 더 많은 산소를 소모하게 되고 개체 수도 줄어든다.미국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 사이에 있는 체서피크만과 멕시코만은 오래전부터 산소 농도가 곤두박질치면서 대표적인 죽음의 바다로 불린다. 어류가 떠나면서 이를 먹고 사는 포식자 동물 개체 수도 줄고 어획량도 줄고 있다. 문제는 탈산소화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몇몇 동물은 이런 죽음의 바다에서 적응하며 번성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생물 다양성은 떨어진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특히 산소가 고갈된 바다에 사는 동물은 성장이 저하되고 번식이 줄면서 질병과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세계해양산소네트워크(GO2NE)는 산소 농도가 다른 해역에서도 계속 내려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죽음의 바다가 늘면서 일부 국가에선 인간 삶도 위협받고 있다. 영세한 개발도상국은 어획량이 줄면서 어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필리핀만 해도 물고기가 떼죽음하면서 매년 1000만달러 이상 피해를 보고 있다. 아름다운 산호가 유명한 나라들도 산호가 사라지면서 관광산업이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리사 레빈 스크립스해양연구소 교수는 “레크리에이션과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호텔, 레스토랑, 택시 같은 서비스도 광범위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계가 기후 변화와 영양분 유입에 따른 오염을 막기 위해 고삐를 더 당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반도 동해 심층 회복 조짐일부 지역에선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남성현 서울대 교수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연구진은 동해 심층 해수 생성이 최근 다시 회복되고 있는 조짐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지난달 25일 소개했다.

이전까지 연구에선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동해 심층 수괴(수온, 염분, 용존산소 등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주변의 해수와 다른 물덩어리) 형성이 약화하면서 2040년께 용존산소가 고갈될 것으로 예측됐다. 수괴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면서 발생하는데, 풍부한 산소를 포함하고 있다. 동해 수괴는 해수면 가까운 곳부터 중앙수, 심층수, 저층수로 나뉘는데 195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부피가 줄고 있다.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1990년대 저층수 형성이 약화한 반면 해수면 대류 영향으로 중앙수 부피가 늘면서 심층수와 저층수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1993년 이후 19차례에 걸쳐 동해 전역에서 장기간 대규모 관측을 했다. 표층부터 수심 3000m의 깊은 바다 밑까지 자료를 수집한 결과 심층 수괴가 2000년대 이후 새로 생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층수의 형성이 활발해지면서 부피 감소율이 현저히 둔화하고 2040년이 되면 소멸할 것으로 전망되던 저층수가 그 이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겨울철 바다와 대기가 열을 주고받고 해빙 형성에 따라 염분이 방출돼 동해 북부 표층 해수 밀도가 커지면서 저층수 부피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동해 심층의 용존산소 고갈이 늦춰진다는 의미로 큰 바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해외에서도 개선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체서피크만은 지속적인 복원 노력과 농업 방식의 변화, 오염 방지 활동을 통해 질소 오염이 24%나 줄었고 인근 해역에서 산소가 전혀 없는 완전한 죽음의 바다는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