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평창 즐기는 태극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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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지난 11일 오후 7시 강원 평창 메달플라자.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인 임효준(22)의 메달 수여식을 보기 위해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임효준은 시상대에 오르며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두 번 쓸어내고 가슴을 툭툭 친 뒤 하늘로 손키스를 보내는 세리머니를 했다. 관중을 향해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일곱 차례의 수술을 이겨낸 뒤 생애 첫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이라 눈물을 쏟을 만도 했지만,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임효준은 개성있는 세리머니를 준비하는 ‘팬서비스’까지 잊지 않았다.
북한 선수 농담 재치있게 맞받아친
쇼트트랙 막내 김예진 큰 웃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특히 올림픽은 사력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 ‘전쟁터’ 였다. 태극기가 주는 부담은 너무나 컸고, 선수들은 성적에 울고 웃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990년 이후 태어난 20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올림픽을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민유라(23)와 피겨 페어 감강찬(23) 두 동갑내기 선수는 한국 선수단의 대표적 ‘흥부자’다. 이들은 지난 7일 강원 강릉선수촌 입촌식에서 ‘쾌지나칭칭나네’에 맞춰 가운데로 뛰어나와 춤을 추며 선수단 분위기를 이끌었다. 감강찬은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방송 카메라가 비추자 두 팔을 덩실덩실 흔들며 춤을 췄다. 이날 오전 열린 피겨스케이팅 단체전(팀 이벤트) 페어에서 김규은-감강찬 조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는 경기 직후 “기분 좋았고 재밌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최선을 다한 뒤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이들은 응원에도 열정적이었다. 단체전에서 다른 선수들이 경기할 땐 오륜마크 모양의 선글라스를 쓰고 소리를 질렀다. 민유라에게는 ‘흥유라’라는 별명도 붙었다.쇼트트랙 대표팀의 김예진(19)은 당찬 막내다. 그는 8일 훈련 도중 북한 정광범(17)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듣자 “거울을 보라”고 맞받아쳤다. 이 일화를 그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직접 말했고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의 장혜지(21)-이기정(23)이 사람들의 애정어린 응원을 받은 이유도 강호를 상대로 씩씩하게 싸운 패기와 유쾌함 덕분이었다. 이들은 8일 승리 직후 파트너십에 대해 설명할 때 “저희는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말했다.
민유라 감강찬 김규은 김예진 장혜지 이기정 등은 모두 태어나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자칫 주눅들 수도 있는 올림픽이지만 이들에겐 도전 그 자체로도 즐거운 축제다.
평창=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