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밸리 포지의 비극'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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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 당시 참극 부른 '가격통제법'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북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밸리 포지(Valley Forge)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유명하다. 1777년 9월 필라델피아에서 퇴각한 조지 워싱턴 휘하의 독립혁명군은 밸리 포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혹독한 전투를 치른다. 그해 겨울 워싱턴은 밸리 포지에서 무려 2500여 명의 병사를 잃었다니, 참화의 실상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의 적(敵)은 단지 영국군만이 아니었다. 혹한(酷寒)과 질병에다 식량 등 군수물자 부족이 더 큰 위협이었다. 병사의 4분의 1만이 겨우 군화를 제대로 공급받았고 아사자도 수두룩했으며 군마(軍馬)용 사료마저 태부족이었다고 한다.
시장의 법칙 외면한 규제는 부메랑 될 뿐
집값 정책도 수요·공급의 원리를 따라야
정갑영 < FROM 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
그런데 워싱턴의 군대를 처참하게 무력화시킨 더 큰 원적(遠敵)은 엉뚱하게도 아군을 지원하기 위한 가격통제법이었다. 1777년 펜실베이니아 의회는 군수물자를 원활히 확보하기 위해 가격과 유통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다. 전시에 아군의 군량미를 저렴한 가격으로 획득하자는 취지는 얼마나 당연한가.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낮은 공시가격에 불만을 품은 농부들은 식량을 숨기고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군에 금을 받고 고가로 팔아넘겼다. 식량은 시장에서 사라지고, 규제 대상이 아니던 수입품 가격까지 폭등했다. 가격통제법이 금세 치명적인 공포의 적으로 돌변한 셈이다. 특별감시기구를 만들고 애국심에 호소하며 벌칙도 강화했지만 섣부른 입법이 빚은 참극을 막을 수 없었다.밸리 포지의 참화를 통탄하며 1778년 6월 13개 주가 참여한 의회는 “가격통제는 유효하지 않고, 공공 서비스를 극도로 악화시키며, 사악한 결과를 초래하니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법령을 제정하지 말라”고 결의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전장에서도 시장을 규제하는 법령으로는 부족한 재화의 공급을 조절할 수 없다. 경제정책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장의 법칙을 좇아야 한다.
최근 현안인 주택 가격이나 일자리 만들기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각종 규제를 쏟아낸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집값은 오히려 더 올라가는 역설이 나타난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간과하고 수시로 단편적인 규제만 반복하다가 시장에 참패당하기 때문이다.
가격을 안정화하려면 당연히 공급을 늘려야 한다. 재건축과 층고 제한을 풀고, 선호 지역은 물론 주변에도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일시적인 부작용이 두려워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면 공급 부족에 대한 기대심리로 가격은 더 상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보유세나 양도소득세를 강화해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도 시장의 법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현행의 재산세나 보유세는 유효세율이 낮아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지 못한다. 양도소득세 역시 세율은 높지만 매매차액의 일부를 납부하는 것이므로 실질적인 부담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요자에게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매도하고 양도세를 납부하면 같은 규모로 이사를 갈 수 없기 때문에 거래를 막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따라서 투기적 수요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려면 전체 보유 주택의 시가가 일정 수준을 넘는 가구에 누진적 재산세를 강화해 실질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산세와 보유세를 통합하고 세율도 선진국처럼 지역별로 차등화해 시가의 1~2% 수준까지 높이면 불필요한 주택 수요가 크게 억제될 것이다. 주택정책에 교육과 문화 등 거주지 선택에 영향을 주는 생활 여건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수요와 공급을 지배하는 시장의 법칙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기이익 추구의 행태에서 비롯된 결과다. 시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애국심이나 자비심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임금이 급등하면 고용이 줄고 공급 부족이 예상되면 투기적 수요가 등장한다. 최저임금 여파에 한국GM 사태, 미국의 통상압력과 금리 인상 등 연초부터 경제 여건이 심상치 않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무엇이 시장을 움직이는지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당위성이 있는 정책도 시장의 법칙에 거슬러 가면 언제라도 밸리 포지의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